김용수 편집국장
초복 날이었다. 더위를 이기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여름철의 최절정을 알리는 초복! 그 초복 날의 온도는 무려 3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삼복더위를 피면서 건강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음식점을 찾고 있었다. 필자 일행도 순천만 대숲 바람소리가 들리는 순천만을 찾았었다.
상사 호에서 순천만으로 이어진 도사 천변에 자리한 왕대밭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수천 평에 이르는 왕대밭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여름의 피서지로는 안성맞춤이었다. 아니다. 사시사철 왕대밭의 운치는 사람들의 심상을 그리고 잇을 뿐 아니라 휴식처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왜냐하면 그 왕대밭을 활용한 휴식공간은 현대인들이 즐겨 찾을 수 있도록 현대식시설과 함께 옛 풍경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곳에는 연인들의 사랑이야기부터 대나무에 얽힌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을 것이다.
지인의 순천만 왕대나무 밭의 사랑이야기를 해볼까 싶다. 지인의 고교시절로 거슬러 본다. 그는 순천여고 2학년생과 교제를 하고 있었다. 그 날도 삼복더위가 시작되는 초복이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순천만을 배경으로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순간 천변을 바라다본 그녀의 입에서 와! 아! 하는 탄성소리가 흘러나왔다. “ㅇㅇ학생! 저기 저 대나무 숲으로 가봅시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대나무 숲이 우거진 왕대밭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으며, 뭔가를 성취하려 했었다. 그곳 대나무 숲에서의 그녀와의 첫입맞춤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달콤함이 서려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던 날도 지금의 왕대밭이었다. 부모의 이민으로 그들은 헤어져야만 했었다. 그녀는 부모의 이민을 반대했었다. 하지만 가정형편상 부모의 이민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지인의 사랑을 뒤로 한 채 부모와 함께 이민을 떠났었다. 이후 그들의 사랑이야기는 아름다운 시와 수필로 그려졌었다. 그들은 결혼 후에도 순천만 왕대나무 밭을 잊지 못했다. 주고받는 편지나 소식에서도 왕대밭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았었다. 훗날의 이야기지만 그들의 사랑은 큰 시인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잡지사와 출판사까지도 만들어서 동서 문학의 한 획이 되었지 않았는가 싶다.
지금은 고인이 된 대시인이었지만 왕대밭에서 대뇌였던 시편과 사랑이야기는 주옥같은 시와 수필로 이어졌었다. 더욱이 순천만 갈대밭과 갯벌 밭 그리고 왕대밭은 송수권 시인의 글밭이었다. 갈목비 열서너 편을 마지막으로 남긴 지인의 업적을 보더라도 그는 순천만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있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대숲바람소리는 그들을 가만두지 않았었다. 교복을 입은 채로 첫입맞춤의 황홀함이야말로 그들의 속삭이던 밀어였을 것이다. 그는 순천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서라벌 예대로 진학하면서도 그녀와의 소식을 끊지 않았었다. 문학소녀 소년사랑이야기의 무대가 된 왕대밭 바람소리가 오늘따라 그리워진다. 송 시인과 함께 닭구이를 구워 먹으며 나누었던 정담들이 스멀스멀 흐르고 있다.
그는 순천의 먹거리 볼거리 놀 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조그마한 시간이 주어지면 필자를 부르고 순천만과 왕대밭을 찾았었다. 그곳에서 얻은 글감은 바로 시와 수필로 이어져 주옥같다.
갑자기 문학이야기가 흘러 나왔지 않았는가 싶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양념이나 다름없다. 다시 말해, 문학예술은 인간의 삶의 애환을 그리면서 새로운 감성문화로 이어지기에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순천만 왕대밭 바람소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식건물에다 상업적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하지만 옛 정취와 운치는 그대로다. 연인들의 휴식장소를 비롯해 남녀노소가 다함께 어울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다. 아마도 먹거리 볼거리 놀거리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지 않았는가 싶다.
삼복더위 속에서 송수권 시인의 “대숲 바람소라”를 읊어보면 무더위도 물러설 것이다. 시편을 게재해 볼까 한다.
대숲 바람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흐르는 게 아니라요
서느라운 모시옷 물맛 나는 한 사발의 냉수물에 어리는 우리들의 맑디맑은 사랑
봉당 밑에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대숲 바람소리만 고여 흐르는 게 아니라요
대패랭이 끝에 까부는 오백 년 한숨, 삿갓머리에 후득이는 밤 쏘낙 빗물소리……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죽창을 깎던, 간 큰 아이들, 황토 현을 넘어가던
징소리 꽹과리 소리들……
남도의 마을마다 질펀히 깔리는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흰 연기 자욱한 모닥불 그을음 내, 몽당 빗자루도 개 터럭도 보리 숭년도 땡볕도
얼개빗도 쇠그릇도 문둥이 장타령도
타는 내음……
아 창호치 문발 틈으로 스미는 남도의 대숲 바람소리 속에는
눈 그쳐 뜨는 새벽별의 푸른 숨소리. 청청한 청청한
댓닢파리의 맑은 숨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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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8 06:3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