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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지역에서 발행한 "흙빛문학"에서 정홍순 시인의 작가노트가 소개돼 많은 문인들로 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7일, 흙빛문학에 따르면 정시인의 시 쓰기의 코드가 따뜻한 향토적 이미지에 남도가락과 순수한 우리 언어를 보듬는다며 그의 시작노트를 '흙빛문학 동인지에 게재했다. 특히 정시인의 시 쓰기는 서정시를 구축하는 코드로 웰빙의 선이며 생체리듬의 선이다고 했다.
게다가 정시인은 자신의 시작노트를 통해 "내가 사는 순천을 삼산이수라 칭하고 있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봉화산 인제산 난봉산과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옥천과 동천이 있기 때문이다.「홀로선 나무에게서」처럼 물은 동천으로 대치되었고 섬은 산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하지만「물꽃」에서는 꽃의 이미지, 즉 생멸의 순환 속에서 피어날 사람에 대한 형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뇌의 물음이자 안타까운 심정이 상실한 마음에서 솟아난 그리움으로 그 그늘을 지고 살아가는 ‘보조개’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라고 서술했다.
광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송수권 시인은 "순천시 해룡면 마산리 희락교회에서 성직자 길을 걷고 있는 정시인의 문단행로가 밝다"며 "종교와 문학은 서로 상통하는 면이 있어 그에 따른 부수적 이미지가 시로 승화되고 있다"고 명 시인의 길을 예고 했다.
또 다수의 문인들은 "정시인의 시편은 세계일보에서 아버지라는 시와 동아일보에서 물끝이라는 시를 문화면에서 각각 게재 했었다"며 "그가 펴낸 '뿔없는 그림자의 슬픔"은 이미 독자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흙빛문학에 게재된 정시인의 작가노트는 다음과 같다.
시 쓰기의 코드가 있다면 무엇일까,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코드가 있을 터이다. 송수권 시인은 노자의 ‘곡즉전曲卽全’(곡선은 완전하다)이 시 쓰기의 코드라고 산문집『소리, 가락을 품다』에서 간략히 적고 있다.
‘곡선의 상법’이야말로 웰빙의 선이며 생체리듬의 선이다. ‘곡선의 상법’속에 소리가 숨 쉬고 가락이 있으며 이 가락은 느림으로 가는 삶이고 시로 말하면 서정의 운율인데 이 상법에서 나오는 체험의 소리를 모아『소리, 가락을 품다』을 엮었음이라 하였다.
따뜻한 향토적 이미지에 남도가락과 순수한 우리 언어를 보듬는 시인의 시 쓰기는 정지용, 서정주, 김영랑을 잇는 서정시를 구축하는 코드이었던 것이다.
시풍을 닮는 다는 것, 코드의 기저를 가져보는 것 모두 시를 쓰는데 자만할 수 없는 태도일 것이다. 자기 개성을 몰수하면서까지 아류의 행세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 또한 독보적일 수 없는 것이 성경을 가장 잘 우려먹은 시인은 윤동주이고 불경을 잘 우려먹은 시인은 한용운인데 베끼는 것과는 다른 것인 만큼 자기 것으로 우려내야할 것 또한 중요한 일임을 가르치고 있다.
향토적 이미지와 남도의 가락을 시화 할 수 있는 작업, 송수권 시인은 음양, 즉 쌍가락지 끼는 법을 자주 언급하고 있는바 그 하나가 ‘인연’이다. 연기설이라고도 하는 ‘인연’은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고 네가 없으므로 나 또한 없는 것이다. 소위 남성성과 여성성이 전인에 속함을 일러주는 말이기도 한데 시가 시이기를 바란다면 음양의 조화를 잘 짜야 한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얼마 전 시인으로부터 절대 낮은 시를 쓰지 말 것과 명시를 쓰라는 당부를 들었는데 향토적 이미지와 남도가락의 중요성을 강조한 듯싶어 나름 성근지게 시를 잘 치고 싶은 마음이다.
이차에 영랑문학상을 수상한 송수권 시인의「물꽃」과 나의 졸시「물꽃」을 감상하고자 한다.
세월이 이처럼 흘렀으니
그대를 잊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강은 온몸으로 경련을 일으킵니다
상처가 너무 깊은 까닭입니다
상처가 너무 큰 까닭입니다
돌 하나가 떠서 물 위에 꽃 한 송이 그립니다
인제는 향기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그것을
물꽃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채석강 가에 나와 돌 하나 던집니다
-송수권,「물꽃」전문
이 시는 시집『파천무』(문학과 경계, 2001)에 수록된 작품으로 문학평론가 황지헌은 해설에서 세속적 인간으로 살아가기, 혹은 속세의 존재 의의란 이 지상에서 찰나적인 ‘물꽃’ 하나 피우는 일이라는 통찰에서 송수권은 세속적 삶의 원리로서 ‘인연’의 신비함으로 나아가는듯하다고 하였다.
‘곡선의 상법’과 ‘소리의 상법’은「송수권론」에서 김준오 교수가 처음 끌어낸 이론으로 시의 이미지가 도시 이미지가 아니고 자연 속의 삶의 이미지로 곡선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물꽃」은 곡선의 강한 자연속의 이미지이며 인연하여 사는 사람의 문양이기도 하다. 하여 시인은 맹문재 시인과의 대담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직선은 악마가 만들어낸 죽임의 선이고 곡선은 천사가 만든 살림의 선이란 뜻으로 풀이했다.
처음부터 고이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는 물이 있기도 하고
상처 하나 없이 떨어져 강의 이름 받는
물이 태어나기도 하고
얼마나 고요해지는지 푸르게 털이 자라
푸른 털이 말라 검은 거죽이 될 때까지
몸 태워 도해한 물의 흔적이거나
수평이 무너지는 여울로 기울어지다
봉화산 높이 가늠하는 해면까지
강이 흔들릴 만큼 무수히 꽂혔다든지
누구든 먹어 물이라고 하든지 간에
너에게로 오는 동안 부황난 꽃이
그리워 삼키던 달 목메어
꽃물이 되려 했음도 잊어버리고
노랗게 꽃은 먼저 피어나
꽃이 지고나면 사뿐 사뿐히 날아서
잘 익은 달맞이 강
동천 곁에 눈부신 물꽃으로 올 것이다
눈 내리는 노을 너의 보조개처럼
-졸시,「물꽃」전문
나는 사람이 무척 그리울 때가 있다. 정해진 사람 말고 사람인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언젠가 남해의 섬 수락도를 바라보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홀로 서 있는 나무를 보면서, 사람이 때로는 물음일 때/아리게 터지는 눈물이 그리웠다//바람의 면적/부러진 가지마다 슬프게/생의 무게 안으로 세우는/수락도//사람이 때로는 물음일 때/가슴속에 배는 빗물이 그리웠다(「홀로선 나무에게서」)고 읊은 적이 있다.
물의 원형은 사람이 왜 그럴까라는 물음을 던지게 되었고 물의 타고난 성질처럼 변질되지 말아야할 것인 사람으로 하여 고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물로 인한 섬은 통점 같은 실체이며 부러진 나무속에는 원의 중심이 그를 서게 만들었던 것 그리하여 섬으로 사는 홀로임을 직시하며 다시 물의 꽃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내가 사는 순천을 삼산이수라 칭하고 있다.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봉화산 인제산 난봉산과 도심을 가로질러 흐르는 옥천과 동천이 있기 때문이다.「홀로선 나무에게서」처럼 물은 동천으로 대치되었고 섬은 산으로 옮겨졌을 뿐이다. 하지만「물꽃」에서는 꽃의 이미지, 즉 생멸의 순환 속에서 피어날 사람에 대한 형상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고뇌의 물음이자 안타까운 심정이 상실한 마음에서 솟아난 그리움으로 그 그늘을 지고 살아가는 ‘보조개’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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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31 08:43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