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개장된 순천만국가정원을 찾는 관광객은 대단했다. 성공여부를 떠나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는 반면 순천지역의 역사성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듯싶다. 특히 순천도호부와 이순신장군의 이야기는 색다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일은 어린이 날이었다. 종일 비기내리는 관계로 어린이들의 자연놀이무대가 무산됐었다.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어린이들에게는 반갑지 않는 날씨였다. 어린이들은 대자연이 펼쳐지는 장소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무심한 하늘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사를 말이다.
어린이날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순신 장군과 순천도호부의 이야기는 더욱 회자됐다. 왜냐하면 어린이들은 무용담이 곁들인 옛날이야기를 좋아한다. 할머니들이 들려주는 구전의 옛날이야기가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희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무용담은 역사성과 충효사상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철학이 담겨있고 세계해전사의 불패신화를 남긴 역사물이다.
우리민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7년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악랄하게 한반도를 침략하고 약탈한 일본의 근성을 상기해야 한다. 지난 5일, 어린이날 행사가 비로인해 수많은 행사가 취소됐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순천지역 사단법인정유재란역사연구회는 지난역사를 환기하면서 순천도호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돌이켜보는 시간을 갖게 됐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써 성웅 이순신 장군을 모를 리야 없겠지만 순천지역에서의 충무공정신은 남달라야 한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자신의 비참함을 떠나 백성들과 조정의 참혹상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의구심이 생긴다.
무엇보다도 순천도호부와 5관5포를 알아야 할 것이다. 전라좌수영의 관할구역은 5관5포로 나누어져 있었다. 다시 말해 5관의 행정구역은 순천도호부, 광양현, 흥양현, 낙안군, 보성군이고 5포는 군사기지는 진鎭이라고 불렀다. 즉, 녹도진, 발포진, 사도진, 여도진, 방답진이다. 이곳 4포가 흥양현 지금의 고흥군에 위치해 있으며 방답진은 여수에 있다.
따라서 소장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이순신 장군이고 그 휘하의 송희립 장군은 직속 군관으로 참모였다. 사도첨사 김완, 순천부사 권준은 지금의 준장 급이다. 게다가 대령 및 중령으로 옥포만호 이운룡, 녹도만호 정운, 소비포만호 이영남, 낙안군수 신호로 편제돼 있었다. 또 어영담은 광양현감이었다. 이외에 특수 군관으로는 나대용은 선박제조전문가로 전선감조군관이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비참했다. 감옥에서 풀려나 백의종군의 길을 걸어야 했다. 아산을 거쳐 순천도호부에 오기까지의 백의종군 길은 서러움과 비애의 길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자식의 죽음까지 겪어야 했다. 난중일기에서도 그날의 심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늘도 캄캄했다. 대낮의 해 조차 변했구나.”라고 말이다.
지난 4월 28일은 제478주년 이순신장군의 탄신일이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는 전국 대처에서 열렸었다. 특히 순천지역 사단법인 정유재란역사연구위원회원들의 활동상은 남달랐다. 아산 현충사참배를 중심으로 충무공의 얼이 서린 곳을 탐방했었다. 순천과 연관된 이야기는 물론 정유재란과 임진왜란의 역사성을 연구하는 자료를 수집했었다.
이학균 정유재란역사연구위원장은 당시의 역사를 되짚으면서 “순천도호부와 연관된 이순신 장군의 활동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부터서라도 사료는 물론 자료 수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정유왜란이라는 강의를 근거로 한 순천의 왜교성 전투와 검단산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한다“며 ”이번 이순신 장군의 묘소와 어린 시절에 자랐던 생가 방문은 매우 잘한 일이다“고 했다.
이뿐 아니다. 백의종군 당시, 순천 낙안읍성에서의 의병, 병기, 군량미 등 명량 해전과 노량해전을 치루기 위한 전략전술의 다양성은 부지기수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에 있어 순천도호부는
전략전술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순천도호부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은 재조명 되어야 할 것 같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과 “역사가 없는 곳에는 인간의 존재가 없다”는 말을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오늘부터서라도 순천도호부의 역사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을 재조명하고 그 필요성을 느껴야한다.
뒤로 넘긴 역사 420년
조선수군본영 고금도는
붉디붉은 북새가 떴다
덕동 우물 벌컥벌컥 들이키며
휴우우우 숨 고르는 난민들은
수 닭 홰치는 소리
벽파소리를 듣는다
산위에 올라 붉새 바라보며
북새, 복새, 뿔새 불살, 불근살
그 뜻 그 믿음 되뇌고 읊조린다
충무공의 “약무호남 시무국가”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그 말
남바다 붉새가 물어물어 나르고
왜놈들 간장 비튼 한산대첩은
지구촌 해전사에 한 획 그었고
울돌목 물길 꿰찬 명량대첩은
왜놈들 수장시킨 고뇌의 바다로
조, 일, 명 3국이 교전한 순천왜교성 전투는
유정, 진린의 뇌물 꾀임수에 통분의 바다로
“한 놈도 살려 보낼 수 없다”고 외치며
왜놈들 퇴각로 차단했던 노량대첩은
충무공이 전사한 죽음의 바다다
옥문을 나선 백의종군 길
서럽고 슬픈 마음 비할 데 없다
정으로 권한 술
차마 사양할 수 없고
억지로 마신 술
취기어린 붉새로 떴다
난중일기서
“하늘도 캄캄했다”는 심정
“대낮의 해조차 색깔이 변했구나”의 통곡
남바다 곳곳을 찢고 찢는 울부짖음이었다
어머니 잃고 막내아들 면까지 잃은
이순신은 실성해 통곡 또 통곡 했다
떠날 수 없는 남쪽바다서
목숨을 던졌던 이 충무공
그 유해를 83일간 모셨던 고금도 월송대
풀도 자라지 않고 장부의 가슴 도려낸다
푸른 달빛이 뿌리는 정유재란
묻혔던 역사 들추고 들춰
그날의 조각난 사연들
남바다 붉새로 뜨고 있다
(필자의 “남바다 붉새” 전문)
* 붉새 /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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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8 07:07 송고
2023-05-08 07:09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