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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를 세계 으뜸어로 만들어 지구촌 문맹을 퇴치한다-
   임진년 새해가 밝았다. 용의 해에 걸맞게 태양이 용트림을 하며 힘차게 솟아오른다. 용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은 상상의 동물이며 민간에서는 수신(水神)으로 숭배하고 있다. 뱀이나 물고기 같은 비늘이 있는 동물을 통틀어 이르는 인충 중의 우두머리인 용은 물속에서 이무기로 존재하다가 때가 되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한다는 신비의 동물이다.
  어린 시절 새해 첫날이 돌아오면 한 마을에 사는 숙부님께 세배를 드리러 갔다. 하얀 옥양목 한복을 곱게 차려입으신 숙부님은 그 해에 해당되는 12지간의 동물을 참 종이에 붓으로 그려 주셨다. 특히 용의 해가 돌아오면 청룡 흑룡을 마주보게 하여 용 두 마리를 그려 주셨다. 숙부님이 그려주신 용의 머리는 낙타와 비슷했고, 뿔은 사슴을 닮았다. 눈은 토끼, 귀는 소, 목덜미는 뱀, 배는 큰 조개, 비늘은 잉어를 닮아있었다. 발톱은 매와 비슷했고, 주먹은 호랑이와 비슷했다.
  그때 숙부님은 손수 그린 그림을 건네주시면서 ‘사람마다 장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장점들을 잘 접목시키면 남을 위하여 사는 큰 사람이 될 수 있단다. 용은 어리석은 인간을 깨우쳐주기 위하여 9가지 동물의 잘생긴 부분의 모습을 두루 갖추었구나! 이 그림을 잘 간직하여 훗날 장점이 많은 사람이 되어야한다’ 고 말씀하셨다. 나는 숙부님의 말씀은 귀담아 듣지 않고, 그림 속에서 숨은 동물을 찾으며 즐거워했다. 그때 청룡 흑룡의 눈동자는 없어 웬일인지 궁금했지만 어른에게 여쭈어보면 실례가 될까봐 가슴에 꼭 담아두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용을 그려 놓고 마지막으로 눈을 그려 놓음,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에 완성함)의 궁금증이 풀린 것은 중학교에 들어가서 국어시간에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배울 때였다. 중국 양나라에 장승요(재위 520~549)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였다. 어느 날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벽에다 우아하고 멋들어진 뿔,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예언이나 기적을 나타낼 것 같은 힘찬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 등을 가진 용 두 마리를 그렸다. 용은 금방이라도 검을 구름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생동감이 펄펄 넘치는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혀를 내 둘렀다. 하지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그림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라고 대답을 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고 성화를 댔다. 그들의 등쌀에 장승요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점을 찍었다. 그 순간 천둥번개가 요동을 치듯 땅이 진동을 하더니 벽이 쩍 갈라졌다. 그 틈 사이에서 용트림을 한 용이 튀어나왔다. 사람들이 놀라 나자빠진 것은 찰나였다. 용은 번쩍번쩍한 비늘로 금빛을 발산하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다행히도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화룡에 점정이 빠졌다’고 하는 말은 어떤 일이 전부 잘 되어도 어딘가 한군데 모자랄 때 쓰는 뜻이다. 중국의 문헌인 ‘광아 익조’에 용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는 것도 중학교 때 처음 알았다.
  용은 일찍부터 중국민족이 상상해 온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간 설화로도 수용되었는지 어렸을 때부터 나는 용에 대한 상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용에 대하여 상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그 첫 번째로 내가 태어난 마을의 바로 앞산에 서 있는 백년 아니 천년 묵은 소나무를 예로 들 수가 있다. 소나무는 몸통이 용의 비늘과 흡사했다. 햇살이 비치면 송진이 허옇게 묻어있는 자리에서 광채가 났다. 원숭이띠로 태어난 나는 나무를 잘 탔다. 그래서 소나무에 올라가는 것을 팔자로 좋아했다. 소나무 등에 올라타고 있으면 용이 용트림을 하고 금방 하늘로 올라갈 것 같았다. 소나무 이파리들이 바람에 나풀거릴 때는 환희 그 자체였다. 용이 두 날개를 펴서 금방 승천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두 번째는 범처럼 생긴 바위 밑에 용소가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마을사람들은 그 용소에는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산다고 했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아침 일찍 그곳에 가보기를 밥 먹듯 했다. 그 이무기는 물의 색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것 같았다. 아침 햇살이 내비칠 때는 물빛이 연 보라 빛이었다. 한낮에 가보면 불그스름하게 빛이 났다. 오후에는 노르스름한 색, 저녁에는 노을빛이 되었다. 밤에는 푸른색으로 조화를 부렸다. 그 이무기는 용이 되기 직전의 영물이었다. 작아지고자 하면 번데기처럼 작아지고, 커지고자 하면 천년 묵은 소나무의 몸통과 흡사했다. 높이 오르고자 하면 구름 위로 치솟았고, 아래로 들어가고자 하면 깊은 샘 속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물론 내가 이무기 말을 하면 동네 아이들은 믿지를 않았다. 새끼물뱀이라고 하고 용소 옆에 사는 능구렁이라고도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카리스마를 가진 용소의 이무기가 용으로 변신하여 구름을 박차고 멋지게 비상할 날을 학수고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혼기가 꽉 차서 용띠 남편과 결혼을 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이 무색할 정도로 이고지고 서울로 시집을 왔다. 부잣집으로 시집을 오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팔자로 타고난 詩人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아니다. 내가 선택한 오직 교육으로 평생을 바친 나의 삶은 우여곡절과 파란만장의 가시밭길이었다. 두 아들을 낳았지만 엄마노릇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남편의 일상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자식에게도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러울 뿐이다. 새해가 돌아왔지만 지난날을 반성한다고 한들 그들에게 잘 해주겠다는 공약을 할 수가 없다. 누가 등을 떠밀지도 않은데 오직 우리나라의 교육만 생각 하는 삶의 연속이다.
  오늘은 새삼스럽게 그 옛날 숙부님이 그려주신 청룡 흑룡 두 마리를 꺼내서 들여다보고 있다. 임진년 용의 해를 맞고 보니 내 나이 벌써 지천명 중턱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이왕지사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장점을 두루 갖춘 용의 모습을 닮아야 하는데 ‘한국어를 세계 으뜸어로 만들어 지구촌 문맹을 퇴치한다.’는 나의 목표는 무모하다. 그러므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화룡정점(畵龍點睛)의 꿈을 꾸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