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동해여인숙이 있었다
비록 환경은 열악했지만
손님들에 대한 예우는 평등해
협소하게 뚫린 벽 구멍 사이로 얼굴 내민 형광등이
두 방을 나란히 한 방처럼 비쳐주었다
고단한 육신 누이고 잠을 청해 보지만
머리 속에 떠 있는 또 다른 우주는
나를 편히 잠들도록 놓아주지 않았다
구조에 문제가 있는 동해여인숙처럼
통제가 잘 되지 않았다
동해여인숙에서 가장 잘 들리는 소리는
자식농사 짓는 소리였다
자식농사는 주로 초저녁부터 시작했는데
부지런한 농사꾼은 세 마지기 씨를 뿌리고도
새벽녘에 한 마지기 더 뿌리는 근면함을 보였다
먹고 살기도 힘들어 허리가 휘었어도
국민총생산에 나섰던 사람들이여
나라에서는 자식농사를 마약농사처럼 여겼지만
그래도 그 힘들이 모여 이 나라가 세워졌다
세계 속의 한국이 되었다
비록 환경이 열악해 동굴 같은 벽지에
조악하게 그려진 춘화도가 얼굴 뜨겁게 했지만
그 곳이 생명의 성지였음을 아는 이 몇이나 될까
지금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은
고척동 산 22번지 동해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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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30 15:0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