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223
반포보은이라 하였다. 이는 까마귀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까마귀는 엄마 까마귀가 늙으면 반대로 먹이를 물어다 먹인다. 까마귀도 부모를 섬기는데, 사람이라면 더 지극히 부모를 모셔야 한다.’이다. 인간인 우리로써는 까마귀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매체를 통해서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자 이야기를 많이 듣곤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낳아준 부모한테 그럴 수 있지? 요즘 애들은 부모에게 버릇이 없어.’ 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지 않는지 한번이라도 생각을 해보았는가? 솔직하게 나는 이런 이야기에 나오는 불효자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도 착각이었다. 내 스스로의 만족스러운 효는 진정한 효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내 경험을 예로 들어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나는 첫 부분에서 거론한 불효자이야기를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읽었었다. 그 글의 글쓴이는 한 유명 브랜드 의류판매점 직원이었다. 그녀는 평상시처럼 진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잠시 후 가게 안으로 중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그의 엄마가 들어왔다. 아들은 요즘 유행하는 바지에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고, 엄마는 허름한 츄리닝에 가디건을 걸치고 계셨다. 아들이 엄마를 보자마자 “창피하게 왜 이런 옷을 입고 왔어!”라고 화를 내면서 진열대에 걸려있는 27만 원짜리 바람막이를 사달라고 졸랐다. 그러자 엄마는 “오늘 먹을 것도 많이 샀고, 밀린 월세도 내야하는데 다른 것을 골라보면 안되겠니?”라고 하셨지만 아들은 버릇없이 엄마를 째려보며 화를 내었다. 글쓴이는 보다 못해 "요즘에는 낮은 가격의 바람막이가 더 잘나가요. 여기 구경해보세요.”라고 하였지만 아들은 무조건 27만 원짜리 옷을 사겠다고 하여 결국 엄마는 사주고야 말았다. 여기서 내가 이 글을 읽으면서 더 화가 났던 건 그의 엄마의 월급이 70만원이었는데 남은 돈이 25만원밖에 없어서 외상을 해야 했었다. 아들은 그것도 모르고 입고 있던 옷을 엄마에게 건네주고 새로 산 옷을 입고 혼자 가게를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직원이 보다 못해 2만원을 보태주었다는 것이다. 아들은 정작 엄마의 허름한 츄리닝에는 불만을 전하면서 엄마의 옷을 사드려야겠다는 생각대신 자신의 옷을 비싸고 좋은 것을 사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읽는 내내 인상이 찡그러졌다. 하지만 나도 이런 적이 없는가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 아들이 효를 실천해야한다. 당연하다. 제일먼저 그는 엄마한테 심하게 말하는 버릇과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가지도록 노력해야한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한 것부터 고쳐나가는 것이 큰 출발이 될 것이다. 우리 부모님도 항상 그러신다. 특별한 것을 하려고 하는 것 보다 평소에 하는 당연한 것을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하셨다. 효도 같다고 생각한다.
위 글의 남학생의 엄마처럼 항상 부모님은 내 자식들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신다. 어렸을 때는 다들 그것을 알지 못했었다. 이제 나도 좀 철이 들었는지 엄마 아빠의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것들을 느낄 수가 있다. 저번 주에도 엄마랑 나랑 동생이랑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잔적이 있다. 내 이불이 얇았었는데 내가 잠든 사이에 엄마가 덮고 있는 이불로 덮어주시고 엄마가 얇은 이불로 덮으셨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한테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내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는데”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당연한 사랑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도 엄마가 ‘딸 바보’라고 하실 만큼 나를 정말 아껴주신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살고 있다고 느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런지 궁금하다.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줄 모른다. 그 행복을 느끼면서 까마귀처럼 은혜를 갚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든다. 이 종이에도 다 채우지 못할 부모님의 사랑을 우리는 은혜로 갚아야할 의무가 있다.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자녀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 효라고 생각한다. 엄마의 세심한 사랑에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알고 아빠가 딸을 걱정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도 고맙게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잔소리는 이것들을 부정하는 이들이 하는 변명이라 생각한다.
당신은 있을 때 잘하라는 말 정말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정말 부모님과 지금의 생활을 지내는 것도 많은 시간이 남지 않았음을 알아야한다. 3년에서 5년이면 이 행복한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효를 행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나이 들어서도 효를 행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렸을 때 미리미리 효를 실천하면 얼마나 더 좋은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서운한 일이 있으면 나에게 “엄마가 되 봐야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렇다. 우리가 부모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다고 확신할 수 있다. 효를 전할 수 있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하고 우리의 진심이 담긴 효를 하자.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2-03-02 08:3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