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013
세상 누구나가 대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잘 대우해주는 사람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이처럼 상대방의 배려에는 늘 긍정적이다. 만약 우리가 힘들거나 어려울 때 일수록 우리들은 배려를 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을 때면 사람을 보는 시선까지 변하기도 한다.
그렇게 수많은 배려를 받아온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작 우리들은 그마만큼의 배려를 해 주었던가. 우리의 배려를 원하는 그들에게 의무 아닌 의무로써 다가가야 한다. 어느 순간 부턴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가 점점 예의와 공경이라고는 모르는 각박한 나라로 변하고 있다. 시간의 경과,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의 많은 변화. 우리 역사 중 짧은 어느 순간이 우리나라의 타이틀을 뒤집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현실을 자기합리화라도 하듯 형식적인 윤리를 배우고 있다.
현실에서는 이처럼 과거와 역사를 농락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과거를 이대로 버릴 수 없는 것은 우리의 마음 깊이, 한 뿌리에 ‘동방예의지국’이라는 한 단어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명예로웠던 과거를 다시 되찾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생각을 고쳐먹고 우리나라의 이름에 걸맞는 국민이 되기 위해 처음부터 할 일은 ‘노인공경’이다. 이는 다른 사람의 눈치로, 버스나 지하철의 자리를 비켜주는 등의 형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적어도 눈치 보지 않고, 강요 받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우러나오는 경경을 해보자. 사실, 누구나 늙는다. 늙어서 노인이 되고 그 때쯤이면 남들의 배려와 대우의 필요도가 높아지게 된다. 우리는 국가의 의무가 아닌 양심의 의무로써 이들을 배려하고 공경해야 하며 마음을 비우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이는 그저 단순히 ‘노인공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러한 활동, 그리고 마음가짐. 이 것이 이 나라를 움직일 수 있다.
개인적 측면으로는 자신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을 비롯한 친분이 있는 노인 분들에게 배려와 공경을 하면서 어째서 그 외에 타인이라 느껴지는 단순한 노인 분들에게는 그러한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인가. 아마도 그 것은 자신이 아는 분들이 아니라는, 그래서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나 하나쯤이야’라는 사고, 못 본 척 해버리는 무심함,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을 삭막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들은 봉사의 목적 이외에도 우리보다 더 많은 세상을 겪고 많은 경음을 해 보신 그들을 공경함은 실ㄹ오 당연하다. 그들도 과거엔 우리와 같았고, 우리도 후엔 그들처럼 노인이 되어 현재 우리와 같은 사람들로부터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는 또한, 역지사지의 문제로 우리는 미래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노인들은 그저 나이를 많이 먹은 인간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살아있는 역사다. 우리보다 오랜 역사를 겪어온 이들을 인생의 선배로서 공경하고 배려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갈수록 고령화되어 노인의 인구는 점점 늘어날 전망이다. 이 사실은 실ㄹ오 부양해야 할 노인의 수가 늘어난다는 결과를 낳는다. 노인들의 비율이 커질수록 그에 비례해 그들의 영향력 또한 커질 터이다. 우리의 일상을 다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할 그들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큰 도약이다.
이로써 우리는 더욱 노인공경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고 같은 ‘역사의 일부’로서 그들을 존중하고 이해하여 배려해야 한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로만 겉치장된 형식적인 공경보다는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을 그분들에게 보여드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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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07:51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