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013
12월의 초저녁 바람은 매우 차가웠다.
그러나 어디서 몰려나왔는지 젊은이들의 물결 사이로 나이 제법 든 내가 걷고 있자니 민망하기도 하다.
그 애들 춥지도 않은지, 여자애들 옷차림이 하도 요상해서 눈이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옆에 같이 걷던 내 짝도 저러면 힘들겠는데, 아기 나 잘 낳을 수 있을는지 걱정이라며 계속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그 말을 듣고 있자니 영락없이 나이 먹은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래도 중늙은이밖에 되지 않은 나이였는데, 이 거리는 우리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란 생각이 강하게 일어난다.
젊은 시절 내 짝이 큰애 가졌을 때 입덧이 심해 김치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그래도 이 거리에서 먹었던 완당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 완당집의 국물 맛은 일품이었다. 그 맛이 집사람의 입맛을 돋우게도 했으니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 그 맛을 보게 했다.
30년이 지난 후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내 짝을 데리고 모처럼 완당 먹으러 간 날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캐럴 송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여유로운 걸음으로 인파를 헤치며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뒤에서 “지남철”하는 고함소리가 들린다.
길 가던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그냥 지나간다.
가끔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도 그런 사람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그냥 귓전에 흘려버리고 그냥 가고 있는데, 내 짝이 당신 부르는 소리 아니냐고 한다.
뭐 그러려고. 가끔 볼일 볼 때만 나가는 남포동 거리에 나하고는 친한 사람도 없고, 또 내 학교 별명을 여기서 왜 듣겠는가, 그냥 무시하고 서너 걸음 옮겨놓는데, 이번에는 더 큰소리로 “지남철” 하고 외친다.
문득 골통 같은 녀석들이 여기서 나를 당황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뒤를 돌아다보았다.
인파 속에서 누구인지 구별이 잘 안 되는데,
갑자기 그 녀석이 내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거의 90도가 되게 머리를 숙인다.
졸업을 했는데도 이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집에 쳐들어와서 밥 내놔라, 술 있으면 내 놓아라 하던 녀석이다.
그런 성격의 애들을 좋아했던 내 짝은 귀찮아하지 않고 자주 밥을 해주기도 했다.
이 녀석은 간이 배 밖에 나왔는지 선생을 전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그의 꾸밈없는 언행이 마음에 들어 농담도 자주 던졌던 애다.
그렇게 자주 쳐들어오는 속내가 은근히 내 딸애를 좋아하는 것 같은 눈치였다.
한동안 그러더니 군대에 가고 그 뒤로 몇 년을 소식이 없던 애다.
그의 손에 이끌려 인근 다방에 앉았는데, 보니 일행이 있다.
그와 같이 온 여자애를 보니 놀라운 재주를 가진 녀석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8등신 미인이다.
그리고는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시킨다.
그때도 내 짝과는 말이 잘 통하던 애였으니 내가 대화에 낄 틈을 주지 않는다.
곁에서 무료하기도 하여 그 여자애에게 일상적인 질문을 몇 가지 던지고 대답을 듣는 정도였다.
빨리 일어나 둘의 데이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으나, 눈치도 없이 내 짝의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가까스로 대화를 끊게 하고 일어서려니 이번에는 그 애가 붙잡는다.
그래서 완당 집에 넷이 앉았는데,
그 국물 맛은 여전하다.
한참 전에 남포동에서 있었던 일이다.
남포동 거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젊은이들로 넘친다. 그래서인지 여기만 나가면 나도 젊어지는 것 같다.
이 도시를 떠났지만, 그래도 1년에 한 번쯤 안경 맞출 때가 되면 꼭 여기 안경 골목에 간다.
품질도 보장받을 수 있고 값도 일반 안경점보다 싸다.
거기다 사람 구경도 할 수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깡통시장에서 온갖 물건을 눈요기할 수도 있다.
난전에서 앉아 먹을 수 있는 먹음직한 먹거리 골목도 있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자갈치 시장에 나가 온갖 생선 구경을 할 수도 있다.
소금기 짙은 갯바람이 바다가 그리워지게도 한다.
12월 차가운 날씨에도 남포동 거리는 젊은 열기로 후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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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6:05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