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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에 모인 염원/최재운
2011-12-09 오전 9:33:40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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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처럼 삼학년 담임선생님들과 함께 팔공산 갓바위에 올랐다. 예전에 혈기 왕성할 때는 운동 삼아 한 달에도 몇 번씩 오르곤 했지만 이젠 일 년에 한 차례 입시 막바지에 오른다. 특정 종교에 심취한 적도 없고 또 그럴만한 입장도 아니지만, 400여명 학생들이 입시를 앞두고 초긴장 상태에 있는 지금, 학생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교장으로서 아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더불어 걱정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온 그들이다. 마지막 저력을 발휘할 수 있게 모두가 정성을 한데 모아야 할 때다.

     


    갓바위란 이름을 얻게 한 판석은 정작 부처님을 조성할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후세 사람들이 별도로 갓을 만들어 올렸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왜 하필 갓 모양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무언가 그럴만한 사연이 있지 않았겠는가 하고 짐작할 뿐이다. 불상과 석질은 동일하지만 조각술과 전체적 균형으로 판단하거나 부처님 위에 판석을 올린 것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 작품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왼손 바닥에 작은 약호를 받쳐 들고 병든 중생들은 치료해주고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는 약사여래불이다.

     


    갓바위가 유명해지게 된 것은 간절히 기원하면 누구에게나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는 속설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나 그 소문을 믿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남쪽에 있는 주차장에서 관암사를 거쳐 올라가는 등산로와 북쪽 선본사에서 출발하는 길을 많이 택한다. 잘 다듬어진 돌계단에 넓고 평탄한 길이라서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어서다.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여기저기 낮은 산등성이들이 허리를 조아린다. 머리 위로 아득하기만 하던 기암괴석들도 어느 새 발에 엎드린다.

     


    전혀 생소한 동남쪽 계곡 등산로를 택했다. 가장 짧은 용주암쪽 길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기 마련이라 거리가 짧은 만큼 경사가 급하다. 눈앞에 빤히 쳐다보이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깝다고 깔보았다가는 의외의 어려움을 겪기 쉽다. 모두가 다양한 소원을 품고 묵묵히 오르지만 깊은 속내를 알 수 없다. 연중무휴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올린다. 특히 요새 같은 입시 막바지에는 고등학교 교사들이 많다. 학교별로 격려행사를 마친 후 삼학년 담임과 교감, 교장이 이곳을 찾아 부처님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정례화 되다시피 하였다. 

     


    갓바위에 오르면 팔도 사투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유명세 덕분이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갖가지 사연을 안고 찾아드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산과 경남지역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한다. 부처님이 바라보는 방향이 동남쪽, 바로 부산 방향이라서 그 지방 사람들에게 특별히 후하여 소원성취에 유리하다고 믿기 때문이란다. 모두들 가지고 온 촛불을 켜놓고 공양미를 바친 다음 수도 없이 절을 올리며 소원을 빈다. 초와 공양미는 집에서 정성스럽게 장만해서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 출발점 주위의 가게에서 구입한다.

     


    부산에서 왔다는 부부는 수능을 앞둔 아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후회 없이 발휘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해 준다면 먼 길이 무슨 문제겠느냐고 말했다. 평소에도 등산객이 많지만 수능이 가까워지면 부쩍 늘어난다. 세속의 치열한 입시 긴장감이 이곳에 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아이 못지않게 긴장감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부모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자신을 고등학교 현직 교사라고 소개한 한 어머니는 딸과 반 아이들의 수능을 앞두고 정성을 다해 기도드리면 부처님도 감동할 것으로 믿는다며 108배를 시작했다.

     


    드넓은 광장에는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자녀의 사진과 기도문을 앞에 두고  향해 수도 없이 절을 올린다. 그 엄숙한 모습에 입시철 우리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아이의 학반이며 생년월일, 지망 대학 이름까지 적어온 사람도 보인다. 자식을 향한 간절한 정성에 한계가 있을 수 없다. 수많은 촛불이 써늘한 바람을 받아 일렁이며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옛날과 달리 부처님 가까이 다가가서 그 주위를 돌며 소원을 빌 수 없어 아쉽지만 정성과 노력을 다한다면 갸륵하다 여겨 넉넉한 은혜를 베풀지 않겠는가.

     


    십여 년간 쌓아온 실력을 가늠해보는 시험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안타까워 속을 태우고 있는 아이들이 정말 안쓰럽다. 내게 어떤 초인적인 신통력이 있어 그들이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있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 답답하다. 멀고도 험한 길을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 모든 것을 하늘의 뜻에 맡기고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로 하여금 마지막 정리를 원만하게 하도록 도와주자. 당일 아침 모두가 더 없이 맑고 개운한 정신상태, 최상의 신체 조건이기를 염원해본다. 

     


    널찍한 광장이 선생님들로 북적댄다. 낯익은 분들을 산에서 만나니 더욱 반갑다. 몸담고 있는 학교는 달라도 제자들을 위한 정성은 같다. 가파른 길을 올라온 터라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수능시험 초읽기에 들어간 아이들이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애타는 심정과 간절한 소망을 과연 얼마나 감지하고 있을까. 이제 이른 새벽부터 진행해온  각종 서원행사(誓願行事)를 마무리 지어야 할 시간이다. 우리 아이들 모두가 각자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주기 바란다. 삼가 옷깃을 여미고 합장한 채 부처님을 향해 다시 선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1-12-09 09:33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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