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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심수필) 영월교도소 가는 길
2017-06-14 오전 10:14:58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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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조차도 하얀 찔레꽃을 피워내는 유월 초하루, 영주 숙수사에 갔다. 30여년이나 교도소 위문을 다니시는 숙수사 종정, 백재 큰 스님이 영월 교도소 정기법회를 하러가신다고, 함께 가서 시 한편 읊으라고 하신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웃어른의 말을 도저히 거역할 수가 없어, 열일 제쳐두고 절간을 나서는 큰 스님의 뒤를 따른다. 

    영월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조선의 제6대 국왕인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이다. 숙부인 세조에게 쫓겨나 열일곱 살 꽃다운 생을 마감한 단종의 고혼을 기리는 문화제에 지인과 함께 몇 년 전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단종의 국장을 비롯하여 궁중 제례의식과 줄다리기,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선발대회, 광대 외줄타기, 별산대놀이 등이 인상 깊었다. 특히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장면과 영월의 언덕배기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단종의 무덤이 가슴을 아리게 했다. 능 주위를 둘러싼 울울창창한 소나무들이 마치 봉분 속에 잠들어 있는 단종에게 절을 하듯 비틀어져 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숙수사 백재스님이 영주를 출발가기 전에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떡집이다. 교도소에서 법회가 끝나면 재소자들에게 떡 한 덩어리씩 나누어 주는 것을 낙(樂)으로 삼고 계신 스님은, 영주 떡집에 들러 200여명 분량의 떡을 트렁크에 싣는다. 백두대간을 따라 태백산 골짜기를 휘돌다 보니 어느새 약수터에 도착했다. 잠시 목을 축이기 위해 차동차 문을 열고나오니, 노송의 아름다운 자태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 힘찬 물줄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곳마다에서 자연의 신비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키가 훤칠한 상수리나무는 쭉쭉 뻗은 미끈한 가지가지에, 잎사귀를 좀 자잘하게 달았다는 것이 흠집이긴 하지만 조금도 구김살이 없다. 대인군자(大人君子)의 풍채와 용모를 갖추었다. 바람 자면 깊은 명상에 잠기고, 잔바람이 일어나면 명상에서 깨어나 잎사귀 나붓거리며 염화미소를 짓고, 바람이 조금 세차면 가지가지를 너울거리며 학춤을 춘다.

    구불구불 뻗어 나간 다래나무와 머루나무 줄기는 족히 100미터가 넘는 것 같다. 아름드리 주엽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를 휘감고 올라가 승천하는 용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것이, 수세기의 세월을 살고 있는 이무기 같다. 아니다. 학이 비상하는 것처럼 땅위를 선회하며 두 줄기로 꼬여 있는 가지가지가 몸을 비틀며, 다양한 곡선을 그리며, 커다란 원도 그리면서 그늘을 만들어 준다.

    키가 작은 두릅나무, 명감나무까지 꽃에 비하여 손색이 없다. 이곳의 모든 나무는 각기 고유한 모습과 풍취를 가진 것이어서 우열을 가리고 청탁(淸濁)을 논할 바가 되지 못한다. 초록일색인 심산유곡에서 마음껏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산개나리와 보랏빛 붓꽃 등이 은근슬쩍 사람의 마음을 빼앗아, 얇고 엷은 미소로 야한 정취를 자아낸다.

    다시 길을 재촉하니 조선후기의 방랑시인 김삿갓의 유적지가 있다. 문학관에 들려보니 난고 김삿갓 선생의 문학세계와 시대정신이 한눈에 보인다. 간접적으로나마 선생의 풍류를 엿볼 수 있어 다행이다. 김삿갓인 김병연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글로 장원급제를 했다는 자책감에 22세부터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시대상을 반영한 수많은 시들을 남겼다. 57세(1863년)에 세상을 등진 김삿갓은 당초 전라도 화순에 묻혔고, 이후 차남 익균에 의하여 유년시절을 보낸 영월군 하동면 노루목 계곡으로 이장되면서, 이곳에 유적지가 조성되었다고 적혀 있다.

    선생의 묘소로 들어가는 길목에다가, 아예 초막까지 지어놓은 일명 현대판 김삿갓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가, 흰모시적삼을 곱게 차려입고 나와 동행한 백재 큰스님을 반갑게 맞는다. 뻐꾹새도 뻐꾹뻐꾹 노래를 부르며 노승을 맞이한다.

    나는 곧장 김삿갓 묘소로 가서, 선생님! 삿갓 선생님은 스스로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고 여겨 머리에 커다란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벗 삼아 산 그리메를 노래하며 인생을 보냈다는데, 시 한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제가 시인입네! 하고 재소자들을 위한 시를 읊으러 갑니다. 정작 삿갓을 쓰고 팔도를 유랑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닐까요? 하고 중얼거리며 넙죽넙죽 삼배를 올리고 있는데, 현대판 김삿갓이 느닷없이 나타나 아하하하! 특유의 웃음을 날리며, 차나 한잔 하쇼! 하고, 삶과 죽음의 언저리에 찬물을 끼얹는다.

    현대판 김삿갓을 따라 초막으로 들어가 큰 스님과 함께 차를 마신다. 어째 그분들이 살아가고 있는 인생사가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아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그 틈에 김삿갓은 부채를 펼치더니 일필휘지 글씨를 써서 나에게 선물한다. 받아든 부채위에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몸이라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흙으로 돌아갈 마음이라고, 부채를 곧게 세워 흐 자에 ㄹ받침은 갈겨쓰고 ㄱ받침은 길게 늘어뜨려 흙 자를 써 준다. 그 글씨가 어찌 보면 가을하늘에서 북쪽하늘을 향해 끼룩끼룩 날아가고 있는 기러기 떼를 연상하게 해준다. 어찌되었든 내가 올 것을 예상하고 미리 부채를 만들어 놓은 김삿갓님의 너른 품새로 보아, 이미 풍류와 해학의 달인이 되었다고 한마디 내 뱉으니, 주위가 온통 웃음바다이다.

    즐거운 시간도 잠시, 백재스님의 차를 타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영월교도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이다. 교도소답지 않게 우리를 반겨주는 교도관들의 표정이 밝다 못해 정겹다. 아침에 헤어졌다가 저녁에 평화롭게 만난 식구들 같다. 한 오 분, 백재 큰 스님이 부처님 못지않은 점잖고 너그럽고 거룩하기까지 한 모습으로, 의관을 정제하신다. 교도관의 안내로 법회를 위해 법당으로 들어가시고, 나는 그 뒤를 사뿐사뿐 따른다. 드디어 재소자들을 위한 어줍잖은 나의 시가 낭송되고, 큰 스님의 정기법회가 시작된다.

    숙수사 백재 큰스님은 수십 년 동안 여러 교도소에서 위문법회를 해 왔다고 했다. 재소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따뜻한 떡 한 덩이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행복이다. 무미건조한 삶속에서 백재 큰 스님은 무슨 의미를 발견하고자 팔순이 되도록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시며 부처님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고 계실까? 영월교도소 가는 길에 나무에게서 군자의 풍모를 엿보고, 초막집 김삿갓에게서는 너털웃음을 선사하며 자연친화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참모습을 발견했다. 영월교도소 가는 길은 깊은 사색을 할 수 있는 역사의 파노라마이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7-06-14 10:14 송고
    (오양심수필) 영월교도소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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