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정유재란 당시 순천부의 행정구역과 민초들의 삶을 살펴보는 시간ㄴ을 가져본다. 행정구역은 현재의 순천시, 여수시 광양시 고흥군 보성군을 비롯해 일부 전남 동부지역을 아우르는 넓은 관할구역이다. 특히 순천부의 민초들은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나라를 구하려는 구국 심으로 똘똘 뭉쳐 군량미를 비롯한 군수물자를 조달했었다.

임진왜란 이전의 조선사회는 이미 내부적으로 깊은 균열을 안고 있었다. 통화제도의 정착실패와 함께, 조세와 공물 제도는 방납의 폐단으로 인해 극심한 수탈체제로 변질됐었다. 따라서 농민을 비롯한 일반백성(민초)의 삶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고, 국가재정은 파탄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은 남해안의 전략적 요충지에 왜성(倭城)을 쌓고 장기농성전에 돌입했다. 순천왜성(왜교성) 역시 그중 하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전라도 공략및 방어 기지로서 축성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이 성의 축성과정에는 인근지역의 조선인 백성이 강제로 동원돼 막대한 고역에 시달려야했다. 이들은 왜군을 위한 군량미 조달과 성벽 건설에 동원됐고, 이 과정에서 왜적의 무자비한 살육과 만행에 희생되기도 했다. 이는 전쟁의 가장 극단적인 양면성을 보여준 것이다. 민초들은 자신들의 삶을 파괴한 적군의 요새를 스스로 쌓아야 하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이처럼 백성은 전쟁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이자, 적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처했다.

하지만 이 지역민초들은 관군의 무능함과 국왕의 파천에 실망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봉기했다. 전직 관리나 유생들이 주축이 돼 조직된 의병은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왜적에 저항했다. 이들은 군량확보는 물론 보급로 차단 등 육지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일본군을 괴롭혔다.

특히 조선수군은 민초들의 지원 없이는 존재자체가 불가능했다. 병사들은 반농반병의 신분이었고,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다가 유사시에 소집되는 체제였다. 또 백성은 군함의 노를 젓는 격군으로 참여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했다.

순천부 산하의 보성 조양창에서 이순신장군이 확보한 군량미 600석은 이러한 민초의 지원을 반증하고 있다. 정유재란당시 이순신 장군은 칠천량 해전의 패배 이후 수군을 재건하며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보성 조양창에 봉인된 채 보존되어 있던 곡식을 발견하고, 군사 4명을 배치하여 이를 지키게 함으로써 병사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는 국가의 중앙 행정 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지역 공동체가 자원을 보존하고 필요할 때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에게 제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1597년,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에서의 참패는 조선 수군을 궤멸상태에 빠뜨렸다. 당시 이순신은 조정의 불신과 원균과의 갈등으로 인해 백의종군(白衣從軍)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정은 패배의 참담함을 깨닫고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했다.

이때 선조는 이순신에게 육전에 합류하라는 명을 내렸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라는 장계를 올리며 수군재건에 나섰었다. 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순신은 무너진 전력을 재건하기 위해 칠천량 해전에서 살아남은 패잔병들을 수습하고, 피난민과 의병들을 규합했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이순신이 가는 곳마다 군사가 늘었고 심지어 전쟁터까지 따라와 술병을 바치는 민초들도 있었다. 이들이 기꺼이 이순신을 따른 것은, 국가가 아닌 이순신이라는 개인에게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재건된 수군전력의 핵심을 판옥선과 거북선에 두었다. 판옥선은 높은 선체구조로 일본군의 백병전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었고, 강력한 화포를 탑재해 원거리 포격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했다. 게다가 거북선은 판옥선을 기반으로 개량된 돌격선으로, 적진을 교란하고 화포 공격을 퍼붓는 데 특화됐었다. 이처럼 이순신은 조선 수군의 우수한 기술과 군사적 전문성을 결합하여 불과 몇 척의 전선으로도 승리를 창출할 수 있는 강력한 전투력을 만들어냈었다.

세계의 해전역사에도 찾아볼 수 없는 기적적인 명량해전은 오직 이순신 장군을 필두로 한 민초들의 활약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명량해전의 승리로 인해 해상권을 장악한 조선수군의 활약상은 더욱더 강해졌었다.

그래도 이순신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사전에 일본군의 동향을 파악하면서 전략에 전략을 거듭했었다. 그는 일본군이 고금도로 접근하기 전에 절이도(折爾島, 현 전남 고흥군 거금도)와 녹도 인근에 함대를 배치해 역공을 감행했다. 1598년 8월 20일(음력 7월 19일), 조명연합 함대 결성이후 첫 연합 전투인 절이도 해전이 발발했었다.

이 전투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군 전선 50여 척을 격침시키고 71개의 수급을 취하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단순한 군사적 전과를 넘어, 조선 수군이 불과 1년 만에 압도적인 전력을 회복했음을 만방에 과시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절이도 해전의 승리는 즉각적인 전략적 이득으로 이어졌다. 이 승리로 조선 수군은 남해안의 제해권을 더욱 확고히 다지며, 순천왜성(왜교성)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 부대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할 수 있었다. 이는 고니시가 육로로도, 해로로도 도망갈 수 없는 독 안에 든 쥐 신세로 전락했음을 의미했다. 이러한 봉쇄는 일본군 구원부대가 순천왜성으로 향하게 만들었고, 이는 임진왜란 최후의 전투인 노량해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었다. 절이도 해전에서 시작된 해상봉쇄 작전이 결국 노량해전으로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절이도 전투는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전쟁의 마지막을 장식한 결정적인 대전투를 위한 필수적인 전초전이었다.

이처럼 정유재란은 순천부 민초들의 힘으로 지역을 지켰으며 더 나아가 나라를 지?던 것이다. 이순신을 따르는 순천부 민초들은 절이도 해전 이후, 이순신이 이끄는 조명연합수군에 합류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순천왜성 앞바다를 철통같이 봉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