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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줌소태라는 병에 걸린 줄만 알았던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아 가족 모두가 충격에 빠지고 그렇게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절망적인 삶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딸이 될 수 있을까? 최근 나는 <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이별> 이라는 책을 읽고 부모님과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봤다. 이야기 속 무뚝뚝하던 남편은 자신이 의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암에 걸린 것에 대해 자책을 하면서 아내를 끝까지 따스하게 챙겨 준다. 반면 나는 ‘엄마와 아빠, 두 분 중 한분이라도 편찮으시거나 빨리 돌아가신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갈까? 절대로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텐데’ 하며, 나 자신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야기 속 남편의 모습과는 다르다. 부끄럽다.
  며칠 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왠지 그날따라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도 재미있지 않았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조용하다. 항상 반겨 주시던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내 핸드폰이 울리고, 어머니께서 입원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편찮으셨지만 아픔을 참고 참다 견디시지 못하고 병원에 가신 것이었다. 언니가 고3이기도 하고, 가족들을 챙길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하루이틀 병원에 가시는 것을 미루시다가 더 병을 키운 것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옷과 이불을 싸들고 병원을 갔다. 한 번도 입원하신 적이 없는 우리 어머니께서 환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 한 구석이 아팠다. 병원 의자에 힘없이 몸을 기대어,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은 가게 일을 하시느라 바쁘신 탓아 나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지금과는 달리 항상 어머니께서 곁에 있어 주지는 못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시간이 적었던 만큼 나는 부모님을 만날 때마다 관심을 받으려고 몸부림치던 철없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는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무슨 일이 있으면 어릴 적, 떨어져 살던 시기에 익숙해진 버릇 탓으로 어머니께 과장되게 말하곤 했고, 그런 나 때문에 어머니께선 놀란 적이 많았다.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자전거를 타다가 얼굴을 다친 일은 여느 때와 달리 내 얼굴에 큰 상처를 남겼고, 그 때 연락을 받고 달려 온 어머니께선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얼굴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흰 수건을 건네시고, 나를 안고 차에 태워서 비상등을 켜고 급히 병원으로 향하셨다. 그렇게 나는 얼굴을 꿰매고 치료받는 동안 놀란 엄마는 긴장을 하셨는지 배를 움켜지면서 쪼그려 앉아 계셨다. 치료를 받고 나오는 나를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눈이 떠오른다. 어머니께서 항상 나를 걱정하고 사랑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편찮으신 어머니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의자에서 기댄 몸을 일으켜 입원실로 다시 들어가 보았다. 어릴 때부터 크고 작은 일로 항상 아프고 다치기만 했던 나는 부모님께 효도보다는 걱정만 끼쳐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일에 해결사처럼 나타나시던 강한 어머니께서 단란한 우리 집이 아닌 흰 벽의 답답한 공간 속에 창백한 얼굴로 누워 계신다. 오전 내 아픔에 지쳤다 잠이 든 어머니 곁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어머니가 수술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전해주셨다. 이때까지 어머니 마음 고생만 시켜서 이런 일이 생긴 거 같아 죄송하고 후회가 됐다.
  그날 이후, 어머니께서 입원해 계시는 동안 학교가 끝나면 밀린 집안일을 맡았다. 평소에 피곤하다는 이유로 어머니도 돕지 않고,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리던 내가 해내기엔 힘들고, 정신이 없었다. ‘아 어머니께서 이렇게 힘든 일들을 하시느라 힘드셨겠네.’ 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나에게 건강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 건강을 잃지 말자고, 그렇게 말씀하신 어머니가 정작 자신의 몸 챙길 겨를 없이 달려오시기만 했던 탓에 몸의 기관들이 점점 이상신호를 보내오는 것 같아 죄송스럽고, 지난 날 무신경했던 행동들이 후회가 되었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집안 청소를 마치고 방에 들어와 쉬면서, 나는 과연 부모님께 제대로 된 효도를 해 봤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나도 이제 부모님 곁을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효도다운 효도를 한번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지금이라도 잘해야 될 텐데 그게 맘처럼 쉽게 되지 않는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수련회 촛불 의식 때 부모님을 생각하며 우느라 바뻤던 나는 그때마다 효도하겠다고 다짐해놓고선 왜 그 마음의 약속을 못 지켰을까. 내가 참 바보스럽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뒤에야 이런 것을 깨닫게 되다니…….
 정말 세상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부모님. 그렇게 소중한 사람에게 나는 진정된 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과연 내가 부모님께 해줄 수 있는 것이 뭘까? 이제야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도 정말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머니께서 우리 딸들 사랑한다며, 최고라고 말해주시면서 나에게는 정말 큰 희망을 주시고, 무뚝뚝한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걱정하시는 마음에 화를 내시긴 해서 어쩔 때는 어리둥절하기도 하지만 항상 우리를 챙겨주시는 최고의 분이다. 나에게 베풀어 주시기만 하는 고마운 분들, 이제 나도 그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야겠다. 부모님께서는 건강하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정말 진정한 효도는 부모님께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 그게 가장 최선인 것 같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매순간 다짐하던 사소한 일들이라도 지나치지 말아야 겠다. 이제 부모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둘 늘어나고, 마음과 육체의 병이 들어가겠지만, 마음만은 평생토록 젊고 건강하게 살게 해드리고 싶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런 딸이 되고 싶다. 지금까지 내가 부모님께 받았던 모든 사랑을 이젠 내가 부모님께 보여드릴 차례다. 정말 시간과 몸이 헛되지 않게 사랑을 표현할 것이다.그래서 평생 내 가족 내 집에서 행복이 끊이지 않게 살고 싶다.
  어머니께서 완쾌하셔서 하루 빨리 우리 다섯 식구가 집에 모여 웃고 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나에게 누군가가 <세상에서가장아름다운이별>에서처럼 한순간에 바뀌어 버린 절망적인 삶에 처해 너는 어떤 딸이 될 것이냐 묻는다면, 이야기 속 남편처럼 나의 사랑을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전해줄 것이라 당당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