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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성에 가서 쾌지나칭칭을 순천사람들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바쳐 한국어세계화운동본부 CEO 오양심
2013-03-12 오전 7:44:13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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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왜성은 1999년 지정된 전라남도기념물 제171호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49호로 지정되었다가 지방기념물로 격하된 곳이다. 순천 왜성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이 초라한 곳이지만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 순천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순천 왜성은 정유재란 때 지은 성이다. 조선 선조 때인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까지 우리나라는 일본군의 침입으로 두 번이나 풍전등화(風前燈火-바람 앞에 등불)의 위기를 맞는다. 첫 번째는 임진년에 침입했다고 명명한 임진왜란이고, 두 번째는 정유년에 침입했다고 명명한 정유재란이다. 그때 지은 성곽의 규모는 36,480평이다. 외성은 2,502미터, 내성은 1.342미터로 이루어져 있다. 외곽성(토석성)3개, 본성(석성)3첩, 성문 12개로 축조되어 있었다. 그때 왜군 선봉장 ‘우키다 히데이에’와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 가 3개월간 축성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  ~1600)는 일본의 정치가이며, 임진왜란 당시부터 왜군 선봉장이었다. 일본 통일을 이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와의 인연으로 왜장이 된 그는 조선의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운다. 부산진성을 공격하고 동래성과 평양성을 함락시키고, 남원성을 격퇴시킨다. 끝내는 순천에 왜성을 쌓는다. 정유재란 때 여러 전투에서 세운 공로의 표식으로, 사살당한 조선의 군사와 백성들은 코와 귀를 잘렸다. 파렴치한 왜군들이 무겁고 부피가 큰 머리대신 잘라낸 코와 귀를 소금에 절여 전리품으로 일본에 보낸 것이다.

     

      그때 왜군에게 희생된 조선인 수는 12만 6천명이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군사와 백성의 코와 귀를 매장한 무덤이 있다. 희생된 원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것이 원래는 ’코무덤‘이었다. 하지만 ‘하야시라잔’이라는 유학자가 ’코무덤‘이라는 명칭은 야만적이라고, ’귀무덤‘이라 바꾸자고 한 뒤로 ’귀무덤‘이 되었다. 지금은 일본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조성된 이총공원(耳塚公園)의 일부가 되어, 임진왜란의 주범인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신으로 모신 토요쿠니 신사에서 100여m 떨어진 무덤위에 5층 석탑으로 세워져 있다.

     

      순천 왜성은 순천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광양만 해역과 해룡일대의 해상에서 우리나라와 중국 명나라의 연합군과 ‘가토 기요마사가’ 가 거느린 일만 삼천칠백 명의 병력이 주둔하여 격전을 벌인 역사적인 장소, 일본군 왜장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패배하여 본국으로 후퇴를 한 쾌지나칭칭 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이 일본군 장수들을 노량앞바다로 유인하여 격전하다가 순절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순천사람들은 물론 다른 고장 사람들도,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나 여자나 쾌지나칭칭 노래를 습관처럼 불렀다고 1934년 발행한 1월 1일의 동아일보에 기록되어 있다. 쾌지나칭칭나/네는 왜장청청이 나온다는 말이 변한 것으로, 남편들은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시고 갈지자를 걸으면서 불렀고, 지게를 짊어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서 불렀고, 삽과 괭이를 어깨에 메고 들판으로 가면서 불렀다. 아낙네들은 밭에서 호미로 김을 매면서 불렀고, 품앗이로 길쌈을 하면서도 불렀다. 멋모른 여자 아이들은 땅따먹기를 하면서 불렀고, 남자아이들은 팽이를 돌리면서 불렀다.

      ‘쾌지나칭칭’ 노래를 부를 때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앞도 뒤도 묻지 않았다. 흥을 일으키고, 곡조를 맞추면서 아무나, 누구나, 앞소리를 하면 ‘쾌지나칭칭 나네’로 뒷소리를 받아넘기면서 윽신윽신 춤을 추면서 불렀다 /일자나 한자 들고 보니 일월이 송송 해송송/ 밤중에 샛별이 완연하네/ 하늘 빠딱 쳐다보니 북두칠성이 돌아갔네/ 어절시구 잘 한다/ 품바 품바나 자리 한다/ 이자 한 장 들고 보니 진주기생 의암이는/ 우리나라를 섬길라고 왜장청청 목을 안고/ 진주 남강에 떨어졌네/라는 품바타령 같은 ‘쾌지나칭칭나네’라는 속요를 불렀다.

     

      순천사람들은 순천 왜성에 가면 호남공략과 방어기지로 사용했다는 일본인의 잔악무도를 구석구석 살핀다.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지만, 검단산성(사적 418호)쪽의 육지부를 파내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축조한 곳,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다리를 놓아, 낮에는 다리로 걸어 다니고, 밤이면 다리를 끊어 들였다는 연못의 위치도 파악해 본다.  순천왜성에서 남해왜성, 사천왜성, 고성왜성, 창원왜성, 양산왜성, 울산왜성까지 이어지는 남해안 800리를 성으로 이어놓은 최후, 최대의 격전지를 회상하면서, 순국선열 및 호국용사에게 묵념은 꼭 올린다. 우여곡절의 역사에 대한 변천과정을 겪으며, 나라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민도 사회도 가족도 불행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사람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과 함께 왜성을 찾는다. ‘쾌지나칭칭나네’라는 노래도 불러본다. 역사의 피비린내를 되새김질하면서 조상님들께 배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뿌리내리기 위해서이다. /높은 성곽에 앉은 왜장은 떨어질까 염려되고/ 물꼬 밑의 송어새끼 물 마를까 염려 되네/ 청천하늘에는 잔별이 많고/ 왜놈 가슴에는 수심이 많다/ 등의 앞소리를 넣어 ‘쾌지나칭칭 나네’ 라는 왜장청청의 뒷소리교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3-03-01 10:18 송고 2013-03-12 07:44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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