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허송세월을 참 많이도 보냈다. 한자공부를 하라는 사람도 없고, 한자를 알지 못해도 학교생활에 지장이 없었다. 그래서 한자를 공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쓰려니 한자를 알지 못하면 언어실력이 향상되지 않았다.

  중학교 배정을 목전에 두고 벼락치기로 한자를 기초부터 공부했다. 드디어 2013년 2월 23일, 순천 대학교에서 한자검정자격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아침 일찍 원호와 정규가 우리 집으로 왔다. 원호엄마는 아이 때문에, 정규엄마는 직장 때문에, 동생 친구들을 우리 어머니께 부탁한 것이다.

  한자시험을 치르러 가는 길은 긴장되고 가슴 설레었다. 엄마도 나도 합격 할 것이라고 확신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왕 합격하려면 높은 점수를 받고 싶어서 나는 자동차 안에서도 한자 기출문제를 풀고 있었다.

  시험 장소에 도착해보니 내 자신이 황당했다. 유치원생들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애는 거의 없었다. 한심하고, 부끄럽고 창피했다. 시험을 치르지 않고 집으로 올까도 생각했지만 부모님을 실망시키기 싫어서 꾹 참았다.

  시험이 시작되었을 때 그 동안 기출문제를 많이 풀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금방 풀 수 있었다. 모르는 한자가 튀어나와 곤란을 겪기도 했지만 말이다. 문제를 다 풀고 주위를 둘러보니 인상까지 쓰며 전전긍긍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철딱서니 없이 내심 내가 제일 먼저 풀었다는 자부심이 살짝 생겼다.

  시간이 많이 남아, 엎드려 자려고도 해보고 핸드폰도 만지작거려 보았다. 하지만 지루했다. 지난날을 회상하여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이 전광석화(電光石火-극히 짧은 시간)처럼 지나가버려, 아쉬움을 후회하고 있는데

  “다 푼 사람은 나가도 됩니다.”

  하고 시험관이 말씀하셨다.

  나는 얼른 밖으로 나왔다. 처음 본 한자시험이라서 두려웠는데 막상 시험을 접해보니 자신감이 생겼다. 다음번에는 4급을 취득하고 싶었다. 하지만 바늘을 허리에 꿰어서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바쁜 날을 보내다보니, 3월 15일에 합격을 발표한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있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은혜야! 축하한다. 시험 합격했다!”

  어머니께서 들뜬 마음으로 말씀해주셨다.

    “점수는요?”

  나는 점수부터 물었고, 어머니께서는 기분 좋게 웃어주셨다. 기쁜 마음에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6급 합격을 자랑 한다는 것이 쑥스러워 제일 친한 친구에게만 알려주었다.

  한문공부를 하면서 우리 국어의 70%가 뜻글자인 것을 알았다. 한자의 뜻글자와 한글의 소리글자를 병행해야 언어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문공부에 열심을 더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