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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월이다. 계사년 정월 대보름을 지켜본지도 꾀 오래다. 대처에서는 계사년대보름 달맞이 행사를 치루기 위해 동분서주했었다. 특히 지자체들은 시․도의원과 자생단체 등 많은 시민들을 참석시켜 대보름 행사를 더욱 빛냈다.
전통 민속놀이인 연날리기와 제기차기, 윷놀이, 새해 소원문쓰기, 지신밟기, 풍물한마당, 쥐불놀이, 소원기원달집태우기 등으로 진행됐으며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하지만 관이 주도하는 대보름 행사장에는 위정자들을 비롯한 영향력 있는 사람, 자생단체들만이 운집해 있을 뿐 자진해서 행사장을 찾는 시민들은 소수에 불과 했다. 시대흐름에 따라서 전통문화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는 동감하면서도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미풍양속과 민속놀이는 계승과 함께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한 낱 메아리에 불과할 뿐, 그 목소리에 귀 기우리고 그 목소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뜻있는 시민과 시골노인에 불과했다.
왜일까? 라는 의문을 제기해 본다. 그러나 명확한 답은 없었다. 다만 산업사회로 치달으면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우리의 전통문화를 잠시 소홀이 여기고 잊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어쩌면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보존하라는 것은 시간적 소비는 물론 그럴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도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는 불에 연관된 민속놀이로써 한해의 소원을 비는 불놀이 중에서 으뜸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해마다 대보름날 밤이면 달집태우기와 쥐불놀이를 즐기는지 모른다.
어린 날이 생각난다. “구변호사”,이 명칭은 마을에서 붙여준 보성구씨 할머니를 일컬은 닉네임이다. 부잣집 큰 딸로 태어나서 인정과 동정으로 한 생애를 마무리 했었던 우리의 할머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한학을 배워서인지, 매우 유식하고 박식했다. 마을에서 애경사가 생기면 제일먼저 앞장섰으며, 싸움이 일어나고 법적분쟁이 발생하면 그 일을 끝까지 마무리 해주는 도덕군자였다.
무엇보다도 ‘구변호사 할머니’는 정월 대보름날이면 큰 가마솥에다가 오곡을 넣어서 찐 찰밥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면서 “무병장수하고 올해 맘먹은 대로 잘되시길...”라고 소망을 빌어 주었다.
게다가 그는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의 유래를 전해주면서 불에 관련된 이야기로 보름밤을 마을사람들과 지샜다.
우리의 전통문화인 보름날의 민속놀이를 상기해 보자. 농경 사회에 뿌리를 둔 전래의 놀이 중에 하나인 쥐불놀이는 농사지을 땅을 기름지게 하여 작물의 생산성을 높이려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진 과학적인 놀이다. 오래 전부터 음력 대보름에 앞서 쥐날이 되면 쥐불이라 하여 마을마다 청년들이 마을 부근의 논두렁과 밭두렁에 볏짚을 흩으러 놓고 해가 지면 일제히 불을 놓아 잡초를 태운다.
그리고 쥐불놀이나 횃불싸움 등과 같이 불이 타오르는 발양력과 달이 점차 생장하는 생산력에 의탁한 민속놀이다. 달집을 태워서 이것이 고루 잘 타오르면 그해는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고,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 이웃마을과 경쟁하여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친다.
또한 달집 속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마을의 악귀들이 달아난다고도 한다. 달집을 태울 때 남보다 먼저 불을 지르거나 헝겊을 달면 아이를 잘 낳고, 논에서 달집을 태우면 농사가 잘된다고 한다. 이 날 들판에 불을 놓는 까닭은 쥐의 피해가 심하므로 쥐를 박멸하기 위함과 논밭의 해충을 제거하고 또한 새싹이 잘 자라게 하는 데 있다.
아무튼 계사년 정월대보름 불놀이에서 소원을 빈 사람들이 많다. 건강이 약한 사람은 건강을,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명예가 없는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서 불놀이를 했으리라 믿는다. 부디 소원성취 하시길 필자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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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06 09:27 송고
2013-03-06 09:28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