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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언제나  / 전진선
보성고 1-3     (이사장상)  
2012-04-13 오전 7:52:52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013

    오늘은 기숙사에 들어가는 날이다. 짐을 모두 꾸려서 까만 엄마의 차에 탔다. 엄마가 다려주신 빳빳한 흰 교복을 가지런히 가방 위에 올린다. 엄마가 타신다. 왜 옆자리에 안탔어? 엄마가 물으신다. 침묵. 고개를 좀 숙인 채 쩔쩔매는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엄마는 오늘도 보지 못하신 듯 하다. 휴우. 나는 언제 엄마에게 나를 전할 수 있게 될까?
     나는 그렇게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이 아니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당당하지도 않은 성격. 이런 나 때문에 고생한 분이 계신다. 언제나 내 주위에 머무르시며 묵묵히 바라봐 주시는 분, 엄마다. 우리 엄마는 내가 알기로는 모두가 좋아하시는 분이다. 항상 열심히 하시는 분을 누가 싫어하실까? 넉넉한 집안 형편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엄마가 화려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엄마의 눈물과, 힘든 모습과, 때로는 초라한 모습을. 엄마는 집에서 많이 웃지 않으신다. 아마 집안일이 너무 고되기 때문에 웃을 시간도 없는 것 같다고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가 도와드리는 일이 아주 조금임에도 불구하고 잘했다고 하시는 엄마의 모습은 항상 슬프게만 느껴진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 동생들에게 뭐라 하면서도 내 자신은 과연 남에게 무어라 할 자격이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엄마가 일하고 계실 때 컴퓨터 앞에 앉아있거나 티비를 보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너무나 미안하고 죄송해서 입을 열 수가 없다. 엄마 앞에만 서면 입이 굳게 닫혀버린다. 사랑한다고, 언제나 정말로 사랑한다고 부드러운 말을 내보내고 싶은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입은 열리지 않고, 엄마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나를 걱정하신다. 때로는 화를 내시며, 때로는 안타깝게 보신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못나고 나쁜 죄를 지은 사람 같아 몸이 졸아드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내가 이정도인데, 이러한 나를 보는 엄마는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하실까. 고생스레 키운 딸이 이렇게 옹송그려서 사는 모습에 엄마는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나는 항상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고 산다. 언제나, 언제나. 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엄마에게 반말을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엄마랑 저렇게 친하게 지내 본 적이 없다. 나는 엄마에게도 예의를 지키며 산다. 그래서 엄마는 항상 내게 섭섭해 하신다. 왜 다른 집 딸들은 그렇게 애교가 많아서 엄마랑 잘 지낸다는데, 우리 딸은 왜 그럴까. 엄마가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볼 때면 나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엄마께 반말을 하려고 했지만 엄마의 그런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더 위축되었고 경어체를 쓰게 되었다. 미안함과 경어. 아주 잘 맞을 것 같은 이것들은 오히려 내게 악순환을 선물했다. 나는 엄마와 친한 친구들을 보면 부럽다.
     내가 엄마에게 먼저 말을 걸 때도 있다. 그것은 주로 불평을 늘어놓을 때여서, 너무나도 이기적인 내 자신이 드러나는 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엄마를 대체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싶다. 나는 엄마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기에, 엄마에게 화를 토로하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을까? 나는 항상 운다. 미안해, 미안해요, 미안해요 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싶은데도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보낼 수가 없다. 전화기 너머로 사랑한다고 해봐, 하고 웃으시는 엄마의 웃음에 따뜻한 말 대신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이 얼마나 이기적인 인간인가! 이기적인 것을 싫어하는 내가 이기적이라는 것은 나를 정말 고통스럽게 한다.
     엄마는 어렸을 적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하셔서, 홀로 광주에 있는 기숙사까지 통학하며 다니셨다. 멀미가 있으셨던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찾아오시지 않으셨고, 엄마는 혼자 공부해서 유치원 선생님이 되셨다. 혼자. 얼마나 쓸쓸하고 외로우셨을까? 엄마는 도시로 가고 싶어 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딸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한 마냥 애 같은 딸이 섬으로 갈 거라고, 농사를 짓고 싶다고 바득바득 우기니 엄마는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셨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이 꼬마아이가 얼마나 귀찮으셨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위해 엄마를 접으셨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내가 문자로 답답함을 호소 할 때마다 포근한 말로 이모티콘과 함께 답장을 보내주신다. 내가 보기에도 억지인 것들에, 화가 나서 풀 곳이 없어서 문자로 보낸 아득바득한 감정이 묻어나는 것들에 답장을 보내주시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오늘도 운다. 어쩌면 이렇게 불효자식이 있을까! 옛날 같았으면 사형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나다. 엄마는 하필 나 같은 괴짜 딸을 만나서 괜히 고생하시는 것 같다.
      엄마는 지금도 고되게 생활하신다. 모든 엄마들이 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도 명절 때 고생하신다. 아빠가 할머니집의 둘째이기 때문에 엄마는 둘째 며느리다. 가만히 보면 나는 속이 너무 상해서 작은엄마와 할머니께 뭐라고 하고 싶다. 가만히 살펴보면, 작은엄마는 일을 조금밖에 안하시는데 할머니께 예쁨을 받고 엄마와 큰엄마는 묵묵히 일을 하셔야 한다. 그것도 엄마는 큰엄마보다 나이가 적기 때문에 가장 힘들다는 전을 하루 종일 부치시고 계셔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이 끝나시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안 계시는 외갓집으로 가셔서 또 일을 하신다. 하루 종일. 나는 어린 동생들의 성화에 못 이겨 놀아주느라 정작 엄마의 근처에는 가지도 않는다. 명절이 끝나시면 엄마는 거의 앓아누우신다. 그러면 물수건을 올려드리고 집안일을 최대한 하는 것 외에는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나다. 그것도 최근에는 기숙사에 들어갔기 때문에 엄마를 도울 기회가 더욱 줄어들었다.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모두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열심히 집을 청소하시는 모습. 엄마가 우리 때문에 유치원교사를 포기하시지 않으셨다면 좀 더 편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미쳐버릴 것 같다. 그것이 너무 화가 나고, 그렇게 화가 남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돕지 않는 나에게 더 화가 난다. 이럴 때면 나는 내가 너무 싫다.
     엄마는 내가 힘들어 하면 자신이 더 힘들어 하실 분이시다. 진실로, 엄마는 내가 엄마를 배신해도 웃어주실 분이시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엄마는 온갖 힘든 일을 다 겪었었고, 지금도 겪고 계시는데도 주부대학에 다니시고, 배구도 하시고, 빵도 구울 줄 아시고, 요리도 잘하시고, 예쁜 글씨도 배우고 계시고, 여성 방법대의 회장으로써 서울까지 교육을 받으러 다니시기도 하는 개혁적이고 당당한 분이시다. 그런 엄마에 비해 나는 너무도 초라하고 작은 존재이다. 나는 넉넉한 집에서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키가 큰 것도 아니며, 몸이 건강한 것도 아니고, 성격이 밝은 것도 아니다. 엄마의 이상적인 모습에 미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운 나는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나 대신에 공부를 잘 하고 밝은 성격의 내 친구가 엄마의 딸이었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했다. 그러면 엄마는 이런 부족한 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될 텐데. 나는 온통 엄마에게 미안하다. 심지어 엄마 앞에서 위축되는 내 태도가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으면, 하고 남들에게 해석이 된다는 것과 내가 이렇게 마른 것에 대해 잘 좀 먹이지, 라는 눈빛을 엄마가 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엄마의 잘못이 아닌데, 모두 다 내 잘못인데 왜 질책과 수근거림을 엄마가 받아야 할까. 나는 엄마에게... 너무 미안하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창피한 딸이다.
     이런 생각을 하던 나는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내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면, 작은 먼지가 되어 꽃들과 함께 휘날리게 된다면 엄마는 또 얼마나 슬프실까. 얼마나. 죽어서도 엄마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이것은 울음이라기보다는 내 자신에 대한 자책과 후회, 공포에 가까웠다. 엄마는 너무나도 자애롭고 따스하고, 바른 분이신데 나는 너무나도 취약하고 어리석은 딸이라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나는 매사에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 학교에서 내가 청소를 하거나, 발표 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정말 사력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 줄 것이다. 나는 엄마를 위해 학교에서는 ‘완벽한’ 학생이 되려고 한다. 막상 집에 가면 의기소침하고 쭈뼛거리는 딸로 돌아가 버리지만, 이것은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모호한 자신만의 표현이다. 그것을 알 도리가 없으신 엄마는 속상하시지만. 내가 이렇게 행동해 봐야 엄마가 기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이럴 수밖에 없다. 나는 나에 대해 모진 질책을 날리지 않으면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모든 것이 풍성한 가정에서 공부도 못하고 어둡기만 한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에. 나는 그래도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웅. 차가 출발한다. 엄마와 단 둘이 차에 탄 나는 어색하기 그지없는 공기를 만들어내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말하고 싶어서 속이 간질간질한데, 말하려고 하면 꼭 타이밍을 놓쳐서 더 긴장되는 상황 속에 갇혀서 답답하다. 그냥, 사랑해, 라는 3글자의 말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말하기가 힘든 걸까. 이 세상에서 가장 말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다. 차가 멈추고, 나는 기숙사로 들어가기 위해 짐을 멘다. 엄마가 따라 나오신다. 여전히 아름답고 밝고, 한편으로는 늦게까지 공부하는 딸을 걱정하시는 따뜻한 모습. 또 눈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엄마가 짐을 들어다 주시겠다고 하시지만 한사코 거절한다. 왜, 엄마가 기숙사 들어가는 게 싫어? 하고 물어 오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목이 메인다. 아닌데, 그게 아닌데. 정말로 그게 아닌데. 답답하고 콱 막힌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엄마도 그러겠지. 결국 포기하신 엄마가 차에 오르신다. 라이트가 켜지고, 차 안에 불이 켜진다. 이제 곧 헤어져야 할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짐을 든 두 손이 바르르 떨린다. 할 수 있어. 괜찮아. 할 수 있어... 네 엄마잖아? 하나, 둘, 셋.
       “엄마!”
       “응?”
       “사랑해!”
    후다닥. 뒤도 안돌아보고 기숙사로 뛰어 들어간다. 잠시 후 빠앙, 엄마의 경적이 울린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말했다. 말했어!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날뛴다. 빠앙. 엄마가 부르시는 걸까? 부끄러워서 얼굴이 벌겋게 타오르는 것 같다. 문을 열고 나간다. 엄마가 나오시기라도 하시면 도망쳐버릴 두 다리를 꽉 붙들고, 소리를 지를 입을 꾹 앙다문 채. 아무 변화가 없다. 차 안에 불이 아직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천천히 시선을 옮긴다.
       “.....”
    엄마가 웃고 계신다. 아무 말도 하시지 않고, 나오시지도 않고, 전화를 거시지도 않고, 그저, 차 안에서 나를 향해 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시고 계신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대신 나도 환하게 웃어주셨다. 엄마가 돌아간 후 자리에 앉은 후에도 심장은 여전히 따뜻하게 뛰고 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신 걸까? 행복감이 전신에 감돈다. 기뻐. 기뻐, 기뻐.. 성공이다. 당당하게 처음으로 성공이다. 엄마의 행복한 미소가 머리를 떠나지를 않는다. 엄마도 나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나도 엄마를 사랑한다. 미소가 얼굴에서 떠날 줄을 모른다. 처음으로 전해졌을지도 모르는 내 마음, 엄마가 잘 받으셨겠지? 비록 옛날 책에 나오는 심청이나 지은처럼 고생을 하며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수려한 효녀가 아닐지라도, 엄마는 나를 이해 해주신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엄마는 내가 엄마를 너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으셨을까?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글로 쓰면 이렇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쓸 수 있는데, 입으로 말하는 것은 왜 이리 부끄러울까? 엄마가 이제 계시지 않지만 여전히 따뜻한 운동장을 계속 바라봐 본다. 엄마도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나를 기쁘게 한다.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2-04-13 07:52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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