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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백나무 숲에서 / 김용수
2014-03-20 오전 9:47:21 참살이 mail yongsu530@hanmail.net

     

    편백나무 숲에는

    야윈 삶들이 꾸물거린다

     

    이파리에 부서진 햇살 따라

    새 삶을 줍고 있는 약발이는

    줄기차게 따라붙는 악발이와 병발이를

    떼어내려고 떨쳐버리려고

    편백나무 둥치 뒤로 숨는다

     

    약발이를 찾는 악발이와 병발이는

    두리번두리번

    곳곳을 훑어보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너울너울 부채춤을 추는

    편백나무 이파리에 쫒긴다

     

    적색 뿌리부터 푸른 이파리까지

    목질부를 타고 오르내리며 만들어진

    향긋한 편백향은

    악발이와 병발이를 내 쫓고 내치는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피톤치드다

     

    편백나무 숲은

    슬라브족 여인네 몸매처럼 쭉쭉 뻗은 붉은 기둥도

    사시사철 너울춤을 추는 푸른빛의 부채이파리도

    원효가 마셨다는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도

    아는 듯 모르는 듯 살포시 스며온다

     

    여보!

    편백나무 숲 좀 봐봐!

    악발이 놈이 쫒겨가다 걸려 죽고

    병발이 놈이 숨으려다 잡혀 죽는

    저 꼴 좀 보랑께, 우습제 잉

     

    언제나 콧잔등이 기어오르는

    풋풋한 편백 향은

    야윈 삶을

    병든 삶을

    아무런 조건도 기약도 없이

    가없는 사랑만 부르고 있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4-03-20 09:47 송고
    편백나무 숲에서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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