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다음 주에는 한가위가 들어있다. 벌써부터 대명절의 분위기에 편승하는지, 사람들의 움직임이 평상시와 다르다. 예초기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가 하면 한가위상에 올릴 음식준비로 전통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예부터 한가위는 민족의 대명절로 조상숭배와 달빛나들이를 즐겼다. 글자 그대로 한가위는 풍요로운 가을의 한가운데를 의미한다는 뜻을 지녔다. 또 가을저녁을 의미하는 추석과 중추절, 그리고 가배, 가배일 이라는 이름도 지니고 있다. 어쩌면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르는 가을저녁의 풍경을 지켜보면서 가을밤의 정취를 느껴보라는 대명절의 뜻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순천낙안읍성의 달빛나들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가위달이 오봉산 기슭을 붉게 기어오르다가 두둥실 떠오르는 광경이야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극치중의 극치다. 금강산 한 자락을 떼다 놓았다는 금전산과 오봉산 사이에 한가위달이 걸쳐 뜨는 시각이면 낙안읍성의 초가지붕은 온통 은빛이다. 그 은빛을 타고 떨어지는 낙엽의 펄럭임과 나뒹구는 체취역시 낙안읍성만이 지니고 있는 절경이 아닐 수 없다.
가끔 필자는 ‘동행’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한가위를 맞이해서 온 가족이 모일 것이다. 그 날만이라도 가족과 함께 동행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가족동행은 한마디로 편안한 시간으로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값진 여행이며, 소통과 화합의 길이다.
아마도 가족동행의 여행은 달이 뜨는 낙안민속마을이 으뜸일 것 같다. 석성으로 둘러싸인 성안 초가에서 밤나들이는 잊혀 질수 없고, 지워지지 않는 추억 쌓기에 안성맞춤이다. 초가의 아늑함은 물론 어머니 품속처럼 포근한 옛 정취에 젖어 느리게 흐르는 삶의 철학도 느낄 것이다. 그 옛날의 풍습은 사라지고 없더라도 옛 풍경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낙안민속마을이기에 더욱 값진 여행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우리의 선인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보면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설계하는 ‘동행여행’이라 생각되어 진다.
순천낙안민속마을 동문입구에서 동헌 쪽으로 들어서면 4백여 년의 풍상을 겪어온 아름드리나무들이 버팀목으로 서서 오가는 길손을 반긴다. 동내리에 자리한 연못에는 갖가지의 연꽃들의 피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며, 진흙속의 진실을 알리고 있다. 또 연못을 지나 남내리 쪽으로 가다보면 옥사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초가들이 자리하고 있어 조선시대 서민동네를 연상케 한다.
게다가 초가지붕에서 피어나는 하얀 박꽃과 주렁주렁 열려있는 푸르스름한 박 열매는 관광객들의 눈요기에도 충분하다. 달빛에 젖은 박꽃 속에는 어린 날의 동심과 추억담이 서려있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동심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이뿐 아니다. 남문성곽 옆, 골목길은 조선의 곡선미를 자랑이라도 하듯 잘도 구부러져 여유와 향유를 느끼게 한다. 또 여성의 부드러움을 연상하는 반면 남성의 힘을 응시하는 듯 조용조용히 타이르면서 곡선의 운치를 감상케 하는 돌담길이 있다.
또 서내리에 들어서면 대장금 드라마의 촬영지인 세트장이 있다. 대장금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던 관계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으며, 사진촬영장소로도 유명하다. 대밭을 뒤로하고 서문 쪽의 성곽을 오르면 낙안읍성민속마을이 한눈에 보인다. 즐비하게 늘어선 초가지붕과 관공서의 기와지붕은 옛 선인들의 활동상을 연상케 하며, 중앙로와 중앙로를 잇는 사이 길들은 옛 광화문거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처럼 순천낙안읍성 달빛나들이는 가족들과 함께 ‘동행여행’을 즐길 수 있으며, 역사의 한 면을 찾아볼 수 있는 장소로 적합하고 여유와 향유를 가질 수 있는 휴식처가 아닐 수 없다. 이번 한가위에는 낙안읍성마을의 민박을 청하면서 달빛나들이를 해보는 것도 좋을 싶다. 삶의 활력을 불어 넣는 인생재충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믿는다.
돌담길에서 만난
열 손톱 봉숭아꽃물들인 그 사람
가슴저편에서 생글생글 웃는 사람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지 않기를
이룰 수 없는 첫정 이뤄지기를
돌담에 새겨두고
돌담길 걸어갔던
잊혀져간 그 사람
새끼손가락 걸고
엄지도장 찍고 찍었었던 그 사람
눈빛저편에서 훌쩍훌쩍 울던 그 사람
눈송이처럼 날아가지 않기를
눈밭에 쌓아두고
눈살에 기대었던
사라져간 그 사람
철지난 풋정이
늙기조차 서러워
성곽 아래 돌담길을
기웃기웃 서성거리며
봉숭아꽃물들인 그 사람
그리메를 쫒고 있다
(필자의 졸시 "돌담길 그 사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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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3 14:47 송고
2019-09-03 21:0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