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수 편집국장
무더운 여름이 꼬리를 감추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가을이 오는 소리일까? 여름이 가는 소리일까? 아무래도 여름이 가는 소리보다도 가을이 오는 소리로 들려온다. 특히 검푸르게 자라난 갈대 키를 바라보노라면 지난여름에 겪었던 가뭄과 수해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반지하방에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었던 서민들의 아픔이 되살아나고, 긴 가뭄에 시달렸던 농부들의 한숨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아니다. 변형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관계로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었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멈추지 않는다. 그 지긋지긋한 여름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도리가 없는가 싶다. 팔월 십오일이 지나자마자 온도가 떨어지고 찬 기운까지 돌기 시작했었다. 해수욕장에서도 입욕할 수 없었다. 가을이 오는 소리는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높아진 하늘소리에서 들려왔었다.
순천만의 가을소리! 그 소리는 별난 소리다. 별무리가 속삭이고 달빛이 옹알거리는 소리다. 더욱이 별빛과 달빛을 껴안은 갯벌 밭과 갈대밭은 서그럭 사그락 동화를 그리다가 동시를 쓰고 있다. 그뿐 아니다. 수필을 쓰고 소설을 쓰고 서정시를 쓰면서 대서사시를 쓰고 있다.
아직은 갈대꽃이 피어나지 않았지만 무성한 갈대밭의 풍광은 가을향기를 불러오고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순천만 갈대밭의 여름은 꼬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가을소리를 엿듣는 고요함보다 무더운 여름밤의 열기가 시끄러웠나 싶다.
지난주였다. 순천만 갈대밭을 보고픈 이남교 소설가와 함께 나들이를 했었다. 사람향기로 다져진 우리들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다. 낙안을 거쳐 고흥으로, 고흥 팔영 대교에서 여수로 그리고 여수 밤바다와 순천만을 구경했었다. 나들이 여정에서 낙안면 ‘꿈지락 작은 도서관’에서의 강좌는 가을소리를 엿듣는 소리였다. 이 작가의 ‘변화의 물결’이라는 인문학 강의도 필자의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의 시작노트 감상시간도 가을소리를 타고 있었다.
조순익 꿈지락 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비롯해 정유진 낙안면장의 협조 속에서 이뤄진 짧은 강좌였지만 보람 있는 시간이 아니었는가 싶다. 아마도 도서관 문화가 정착된 순천시의 가을소리는 책 읽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일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가을소리는 여자만을 휘돌아 순천만 갈대밭에 머물고 있었다. 팔월의 끝자락에서 구월로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천만 갈대밭소리다. 가을을 타는 사람들은 서둘러 갈대밭을 찾아서 서걱거리는 갈밭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색에 잠길 것이다. 참으로 좋은 재주를 지닌 갈대밭이 아닌가 싶다.
시인묵객들이 모여드는 갈대밭과 갯벌 밭은 순천만의 자랑거리다. 세계연안습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보다 앞서 문학과 예술의 창작무대로 더욱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김승옥 소설가와 송수권 시인의 문인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글밭이고 그림 밭이다. 어쩌면 순천만은 사색과 함께 낭만을 즐기며 새로움을 일컫는 창작 장소가 아닐까 싶다.
순천만의 가을소리는 작은 소리다. 아주 작은 소리다. 귀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다. 조용조용히 들려오는 그 소리는 자연소리다. 생명의 소리다.
순간, 인디언의 생생한 자연목소리가 그들의 시를 통해서 순천만 가을소리로 들려오는 듯싶다. “물질문명에 오염돼 힘들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그들의 맑은 영혼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한다. 인디언은 자연과 하나 된 삶을 살았다. 우주를 자신이라고 여기고 살아왔다. 하늘과 하늘에서 해가 뜨고 지는 숭고한 시간들을 가까이서 느끼면서 살아왔다. 내가 태어나게 된 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어머니가 낳을 때 겪은 극심한 고통과 생명을 준 아버지를 기억한다. 만물이 태어나고 자라는 삶의 터전인 대지를 어머니처럼 소중하게 여기고 산다. 대지 위에서 살고 있는 나무와 각종 식물들과 동물들을 모두 자신처럼 존중하고 아끼면서 산다. 그들은 자연과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살라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을 자신처럼 여기면서 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를 형제처럼 여기며 살라고 한다.”
이처럼 순천만의 자연은 수많은 생명체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다. 가을소리 엿듣는 순천만의 내일이 밝다. 날마다 생명의 소리를 읊조린다. 영원성이 있는 대자연 속에서 또 한 생명이 태어나고 있다. 잊혀 지지 않고 지워질 수 없는 자연소리는 순천만을 떠날 수 없다. 순천만 가을소리를 엿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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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9 07:16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