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강원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눈 쌓인 강원도 산간지방은 백색의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을 본 나의 가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숨소리마저 가빠지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 감성도 그에 따르는 법인데 이 무슨 망령이란 말인가? 그러나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늙어도 마음만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1980년대 중반의 서울특별시 은평구 수색동의 풍경은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미개발로 인하여 자연 그대로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는 수색동에 있는 ‘철도청보급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퇴근 무렵이면 직원들과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 있었다. 이름 하여 수색동 <버드나무집>. 그 집에 가면 많지 않은 술값을 지불하고도 기분을 낼 수가 있어 좋았다.
어느 해 눈 오는 날 밤이었다. 그날은 연말이었기 때문에 여느 때보다 많은 직원들이 참석한 것 같았다. 버드나무집 문을 열자 주인보다도 종업원 아가씨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낯이 익었던 터라 그 아가씨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대령했다. 소주, 맥주, 양주… 그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다 내놓았다. 안주도 마찬가지였다. 치킨, 꼼장어, 골뱅이… 끝이 없이 나왔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이 났다. 참석인원이 많다보니 그리 되었으리라. 어느 정도 술기가 오르자 즉석에서 몇 곡의 노래도 부르지 않았나 싶다. 한참을 놀다가 주위를 살펴보니 후배 한 사람과 나, 두 사람만 달랑 남아있는 것이었다.
“야! 모두들 어디 갔지?”
“집에 갔겠지요.”
“뭐 집에 가? 의리도 없이…”
순간 나는 발끈했지만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넘어 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후배와 나는 그 집에서 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때 갑자기 등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방범대원들이었다. 우리들은 도망갈 사이도 없이 현장에서 붙잡히고 말았는데 문제가 복잡해지고 말았다. 통금위반으로 파출소 유치장 신세를 져야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왜 그렇게 통금을 위반한 취객들이 많았던지 파출소 유치장이 비좁을 정도였다. 모두가 노숙자의 행
색이었다. 까치집이 된 머리칼이며 꾀죄죄한 얼굴이며 누더기 옷차림이며… 갈데없는 구제불능의 인간들이었다. 구린내 나는 그들의 입들은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육두문자가 끝없이 쏟아졌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이었다. 저물어가는 그해 연말에 보았던 유치장 속의 풍경이 오래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당시는 국가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일 차 경제개발과 이 차 경제개발이 끝난 시점이었지만 국민소득은 바닥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 내가 세 들어 살던 집은 역시 은평구 수색동에 있었는데 사고는 바로 그 집에서 발생했다. 눈이 많이 내리던 날 아침이었다. 내가 살던 방과 인접해 있는 방에 세 모녀가 살고 있었는데 세 사람이 모두 시체로 발견된 것이 아닌가. 연탄가소 중독 사고였다.
곧이어 달려온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들은 회생하지 못했다. 가난한 것 밖에는 죄가 없었던 사람들… 나는 밤마다 그들의 환영이 눈에 밟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기고 말았다. 그것만이 그들의 기억을 지우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눈과 관련된 나의 추억(?)은 이렇게도 지난하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눈이 오는 날이면 바닷가를 찾거나 호젓한 산사를 찾아가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옛 고향을 찾거나 이름 난 유적지를 찾은 사람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목원을 찾아서 ‘겨울연가’의 한 장면을 연출해 보는 사람도 있고 정동진 바닷가를 찾아서 오염되지 않은 원시의 겨울과 만나 찌든 때들을 씻어버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한계령에 휘몰아치는 눈발,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말없이 걸어가는 젊은 두 사람의 실루엣,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부러지던 소나무의 생가지, 바람 부는 거리의 모퉁이에서 맛보던 군밤의 따스한 온기, 까닭 없이 즐거워하던 개들의 설레임, 어둠속으로 사라져 가던 망개떡 장수의 외침… 이런 삽화들은 눈 오는 날을 가장 눈 오는 날 답게 서술해 주는 그림들이 아닐까.
누구인가 이 겨울
곱게 단당을 하고 찾아오시는 이가 있다
나는 그를 위해
대문도 창문도 열어놓지 않았건만
먼 길 마다않고 오시어 내 품에 안긴다.
천국으로 떠난 자들의 소식을 안고
풍요와 빈곤의 벽을 허물며
원망과 울분의 말들을 지우며
십 리 지나 천 리 밖 만 리 밖에서
치마폭 펄럭이며 오시는 이여
나뭇가지에 내리면 꽃이 되고
산 위에 내리면 그림이 되고
가슴에 내리면 시가 되나니
오오, 빛나는 축복이여
그대는 정녕
때 묻지 않은 첫 사랑의 모습이거늘
나는 그대 앞에서
존재의 희열감에 눈물을 흘릴 뿐
할 말을 잃는다
필자의 제 3시집에 실려 있는 <첫눈>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흑백영화처럼 행간에 어둠이 묻어 있지만 나는 아직도 그 흔적을 지워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했던 시절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눈이 오는 날이면 그때 그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곤 하니 나의 이 치유불능의 고질병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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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07 09:43 송고
2016-11-07 09:4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