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전면%20용서폭포

객지에서 떠돈 몸
허리 굽어지니 고향 그립다
젊은이는 약에 쓰려고 해도 없는 고향
살아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지만
찾아가 옛날 친구 만나
없는 화롯불 뒤적이며
오순도순 옛이야기 나누고 싶은 겨울밤이다

저녁밥 일찍이 먹고 마을 회관에 내려가
한참을 놀았는데도 밤은 길어
황진이의 동지섣달 같은 밤은 길어
한허리 베어내어 어론님 오시는 날 펴지는 못할망정
가랑잎 뒹구는 소리 말을 달리는 텃밭에 나가
묻어둔 청무나 몇 뿌리 뽑아다가
슬겅슬겅 깎아 먹고 싶은 겨울밤이다

어느 집 누구의 방에선가는
장화와 홍련을 주제로 한 고전도 들려올 듯 하다만
눈이 푹푹 내려 길이 막혀버린 이런 날엔
평안북도 정주 어느 산골에서 태어나
구수한 고향 사투리 잘 썼다는 백석의 시를 읽으며
동치미국에 국수를 말아먹고
나도 백석처럼 허름해지고 싶은 겨울밤이다

제삿날이면
길눈이 어두운 할아버지 헤매실까봐
호롱불 밝혀 고샅길에 걸어두시던 할머니
베짜기 흥타령으로 일부종사의 길을 갔으면서도
마디마디 맺힌 데가 많았던지
많이 묵고 가씨요
무정한 양반!
메밥에 숟가락 꽂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겨울밤이다

암으로 죽어가면서 암인 줄도 모르면서
마른 복국이 먹고 싶다는 아버지의 부름 따라
복국 끓여먹고 통시길 나와 보니
옛날의 국자 같은 북두칠성이 또렷했다던
어느 시인의 슬픈 시
다리와 다리가 만나는 슬픈 가족사의 밤이 생각나는
겨울밤이다

설이나 쇠고 돌아가시지
하필이면 그믐날 돌아가신 생령이 있어
겨울문상 다녀오는 길
망자가 마련한 마지막 자리에서 술잔 받으며
칠십이 조금 넘은 나이에 눈을 감은 그를 두고
잘 가신 거라고들 입을 모으던 사람들
어떻게 하면 내 생애의 마지막 길도
잘 가는 것이 될까를  생각하며 돌아오던 날
멀리 별빛만 선연하던 그 밤이 생각나는 겨울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