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변환_2011년11월%2030일%20058
도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당찮은 오기를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고 속없이 객기를 부리는 것도 정도가 있다. 봄부터 준비하여 더위가 시작되던 유월 뙤약볕 아래 흐드러지게 피어 뭇사람의 혼을 빼놓더니 세월이 흘러 서늘한 가을도 지나고 겨울로 접어들었건만 교정 울타리에는 넝쿨장미 몇 송이가 아직 버티고 있다. 한껏 차가와진 겨울에 무슨 미련이 남았는가. 칼바람이 소매 속을 파고드는 매서운 날씨에 눈 시리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섰다.
파란 잎, 빨간 꽃, 연두색 철망과 뒤엉켜 피아(彼我) 구별마저 어렵게 한다. 그 많던 친구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가. 차가운 날씨에도 매끈한 줄기에 돋은 가시는 여전히 매섭고 예리하다. 인간 세계와 같이 온갖 고통을 견디고 모진 풍상(風霜)을 이겨낸 개체만 살아남았다. 동료들 죄다 잃고 지금껏 버티어온 그 생명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외로워서 더욱 서러운 선홍색 꽃송이가 숨이 막히게 해맑고 고와서 차라리 고개 돌려 멀리 더 높은 창공을 응시한다.
장미의 끈기는 과연 어디까질까. 무덥던 여름 거센 비바람하며 서늘한 가을바람을 슬기롭게 이겨냈다. 천방지축 머슴애들이 흙먼지 일으키며 축구공 쫓아 내달리면서 숱하게 괴롭혔지만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 없이 잘 참았다. 조심성 없는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윗도리가 그 화사한 얼굴을 마구 덮쳐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난데없이 때지어 나타나 까르르 웃어대던 여자아이들의 대책 없는 소란에도 침묵으로 일관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장미는 오래 전부터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강렬한 향기와 짙은 색깔은 인간들에게 강한 의지력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심어주었다. 화려하고 현란함에서 스며 나오는 위엄과 품위로 꽃 중의 꽃으로 군림했다. 장미는 승리의 상징이었다. 군대가 개선할 때 장미꽃다발 세례를 받았다. 영원한 생명력과 부활의 신통력을 믿어 장례식장을 흰 장미꽃으로 장식했다. 흔히 학교에서 장미를 교화(校花)로 지정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교정에는 장미 이외에도 땅 속 깊숙이 뿌리박고 묵묵히 비바람을 견디고 있는 초목들이 많다.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칠 때면 그들은 서로가 든든한 보호막이 되었다. 초목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기나긴 세월을 함께 견디어온 동반자이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덩치 큰 나무들이 잎을 지운 지 오래이건만 장미는 마냥 푸르기만 하니 놀랍지 않는가. 인고(忍苦)의 세월을 무던히 견뎌낸 보람이 있어 혹독하게 추운 날씨에도 꿈쩍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활엽수를 보자. 잎이 떨어지니 가지마저 생기를 잃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여름철 무성하던 모습을 찾기 어려운데 장미 잎은 짙은 녹색 그대로다. 쌀쌀한 날씨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씩씩한 모습이 주위 초목들과 뚜렷하게 대조를 이룬다. 녹색 잎, 빨간 꽃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선명하다. 차가운 날씨 세찬 바람에도 남은 잎사귀 몇이 선홍색 꽃을 정성스레 지키고 있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주인을 버리지 않고 함께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
시속(時俗)의 변화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소신을 바꾸고 힘 있는 사람을 쫓아 해바라기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인간 군상을 생각하면 씁쓰레한 느낌이 든다. 갈대처럼 나약해 빠져 작은 세파(世波)에도 마구 흔들리는 인간이 아닌가. 이제 곧 강추위와 함께 진눈깨비 흩날리며 사납고 매서운 북풍한설(北風寒雪) 들이닥칠 텐데 그 가혹한 시련을 어찌 감당할 것인지 걱정이다. 설중매(雪中梅)란 말은 있지만 설중장미(雪中薔薇)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동장군(冬將軍)이 본격적으로 위세를 떨칠 때가 되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들이 겹겹이 몰려올 것인데 맨 몸으로 버티고 있는 장미가 안쓰럽다. 꽃 몇 송이와 잎사귀 두어 장으로 혹독한 엄동설한(嚴冬雪寒)과 맞설 수 있을까. 그러나 강추위를 예고하는 여러 가지 조짐 속에서도 의연(毅然)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참으로 놀랍고 가상하다. 조그만 장애에 부딪혀도 쉽게 좌절하고 곧장 포기하는 우리 인간들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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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7 08:4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