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민사1
420년 전 임진년 누란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 장군의 호국충절의 정신을 되새기기 위한 제467주년 이충무공 탄신제가 이충무공 사액사당 1호인 여수 덕충동 소재 충민사에서 성대히 개최된다.
이번 제467주년 탄신제는 420년 전 임진년 이충무공의 휘하부대 집결례를 시작으로 시립국악단 취타연주, 삼현육각(피리2, 해금, 대금, 북 장구)의 음률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탄신제례가 시작된다.
특히 이번 탄신제에는 「세계 4대 미항 여수」를 이끌어갈 미래의 해양 동량들인 해양소년단원들이 참여하여 이충무공의 탄신을 기념하고 구국의 정신을 계승하는 장을 마련했다. 아울러, 탄신제 기념 문화예술행사로 전국바다사생대전, 전남연극제가 함께 펼쳐진다.
▲통영의 충렬사보다 62년,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전에 건립된 충민사
여수 충민사는 충무공 사당으로서 최초의 사액사당이다.
통영의 충렬사보다 62년, 아산의 현충사보다 103년 전에 세워졌다.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한 3년 뒤인 1601년(선조 34년) 왕명으로 우의정 이항복이 현지시찰을 하고 통제사 이시언의 주관아래 건립됐다.
1870년(고종 7년)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873년 증수 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 다시 철폐되었다가 1947년 지방유림이 원위치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수 충민사에 배향된 충무공 이순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을 기리기 위하여 여수 지역 유림과 주민들이 매년 음력 3월 10일에 춘기 석채례를, 음력 9월 10일에 추기 석채례를, 4월 28일 충무공 탄신제를 거행하고 있다.
여수 충민사의 건물은 사당, 외삼문, 내삼문, 홍살문이 남북으로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사당 왼쪽에는 흥국사의 말사인 석천사가 있고, 외삼문과 내삼문 경내 오른쪽에는 충민사 정화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 기와지붕 겹처마이고, 기단은 3단의 장대석으로 이루어졌다. 민흘림의 원형 기둥 위에는 익공(翼工) 두 개를 겹쳐놓았고, 기둥머리 사이에는 화반을 끼워넣었다. 사당의 정면 어칸의 창호는 사분합문이며, 양쪽의 창호는 삼분합으로 모두 띠살문이다. 사당의 외삼문은 맞배지붕이고, 내삼문은 맞배지붕 가운데가 양쪽보다 높은 솟을대문이다.
▲이 지역 이충무공 주요 유적지
● 이충무공 자당 기거지
전라남도 여수시 웅천동에 있는 충무공 이순신의 어머니의 기거지로 이곳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나서 약 5년간 충무공의 어머니와 아내 방씨 등 가족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변씨는 이순신이 8세 때 살림살이가 가난하여 아산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면서 살다가 69세 때 남편이 죽고, 78세 때 임진왜란을 겪었다. 이순신은 1592년(선조 25)부터 약 5년간 어머니 변씨와 아내 방씨 등 가족들을 전라좌수영 내 송현마을에 모셨다.
이순신의 어머니와 아내 방씨 등 가족들이 살았던 곳은 현재 안내문이 있는 곳과 정평호 집 장독대를 포함한 곳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 타루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타루비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6년 후인 1603년에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비각 안에 보관되어 있어 비교적 양호한 상태이다. 타루비는 좌수영대첩비와 함께 보물 제571호로 일괄 지정되어 있었으나, 여수 주민들이 분리하여 보물로 지정할 것을 정부에 건의하여 1998년 11월 27일 보물 제1288호로 지정되었다.
● 좌수영대첩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조선 중기 이순신 장군의 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다.
좌수영대첩비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부하로 있다가 전라좌수사, 황해병사를 지낸 유형(柳珩)이 돌을 보내 김상용(金尙容)이 전을 쓰고, 이항복이 비문을 지었으며, 비문은 김현성(金玄成)이 새겼다. 끝부분에 ‘만력사십삼년오월립(萬曆四十三年五月立)’이란 명문이 있어 1615년(광해군 7)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좌수영대첩비는 국내 비석 가운데 최대로 길이 3.6m, 폭 1.27m, 두께 27㎝에 달하며, 보물 제57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여수경찰서장 마쓰키[松木]가 1942년 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하여 대첩 비각을 헐고 대첩비와 타루비를 반출했던 것을 1946년 경복궁 뜰에서 여수사람 김수평이 발견, 여수 시민들이 뜻을 모아 1948년 5월 24일 여수에 복구했다.
● 동령소갈비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에 있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를 세우게 된 내력을 적은 조선 후기 기실비.
현감 심인조(沈仁祚)가 ‘통제이공수군대첩비’의 건립 경위와 여기에 참여한 인물들, 그리고 건립하기까지의 어려움 등을 상세히 기록함으로써 후세에 충무공 이순신을 숭모하는 정신을 전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장방형 비신 뒷면 음기에 "숭정기원후주갑무술인정일립(崇禎紀元後周甲戊寅丁日立)"이란 명문이 있어 숙종 24년(1698)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소대 내 통제이공수군대첩비와 타루비 옆 비각 안에 있으나 석질이 사암이라 마멸이 많이 진행되고 있어 비좌의 문양은 식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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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8:27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