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가을비가 오고 난 다음 날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시 부평구 동수로 거리에는 떨어져 누운 은행잎들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여학생들은 책갈피에 꽂기도 하고 뺨에 대고 비벼보기도 했다. 중년의 여성들은 낙엽 진 거리의 풍광에 자신의 모습을 담아 펑펑 셔터를 눌러대기도 했다.
무심코 나도 그 거리를 걷다가 멈추어 섰다. 갑자기 추억의 현장에 당도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옛날에도 은행잎은 그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 쪽의 추억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혜리는 고등학교 시절 내가 사랑했던 여학생의 이름이다. 그녀는 문학소녀였다. 그녀는 가을만 되면 문학병이 도져 깨끗하게 건조된 은행잎에 시를 적어 보내곤 했다. 자작시를 보내기도 했지만 더러는 구로몽, 베르렌느의 시를 곁들이기도 했다.
“시몬! 나뭇잎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조롱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이렇게 시작된 시는 누구나 낙엽일 수밖에 없는 인생의 과정을 담고 있지만 그렇다고 회의적이거나 허무적이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떨어져 뒹구는 낙엽은 이브몽땅의 노래 ‘고엽’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시청 청소과에서는 은행잎 퇴치(?)에 비상이라도 걸었는지 은행잎을 일거에 처리해 버린 것이 아닌가. 나의 눈에는 깨끗하다기 보다는 삭막하다는 느낌이었다. 비가 그치고 난 다음날부터 시작된 청소작업의 결과였다.
프랑스의 세느강의 거리나 고풍스러움을 자랑하는 독일의 네카강변의 거리도 오히려 뒹구는 낙엽 때문에 영화나 명곡의 산실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한 이 나라의 행정은 그렇지 못해 뒷맛이 씁쓰름했다.
옛날에 우리 조상들은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 가난 속에서도 멋과 선비정신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여유를 즐길 줄 알았다.
간밤에 불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아희는 비를 들고 쓸으려 하는 괴야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쓰러 무삼하리오
조선후기 학자로서 이조판서에 추종된 바가 있는 ‘선우협’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시의 주제가 되고 있는 낙화나 낙엽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서 여기 인용해 보았다. 시인은 떨어져 있는 낙화를 떨어지지 않은 꽃과 동일하게 여겨 더 보고 싶으니 서둘러 쓸어버리지 말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운치 있는 발상인가. 도도한 선비정신과 자연에 대한 애착을 엿볼 수 있다.
혹자는 시대에 걸맞지 않은 소리나 하고 있는 나를 구닥다리라고 힐책 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춤거릴 시간도 없이 일시에 처리해버린 가을의 정취가 아쉬워 한 마디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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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8 09:5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