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도 풍요롭고 너무도 아름다운 반도 땅, 고흥반도의 이야기는 시작도 끝도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까지 이야기해야할 지, 종잡을 수 없다. 그러나 고사모(고흥을 사랑한 사람들의 모임)의 마음과 고흥을 수놓은 사람들의 발자취는 소금 꽃으로 피어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더욱이 박병종 고흥군수의 문화예술사업의 혜안은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의 가치관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필자는 고흥사람도 아니지만 고흥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지구촌에서 제일 풍요로운 반도 땅으로 내 가정을 맡길 수 있는 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다시 말해 지구촌에서 문화예술이 풍요로운 나라는 반도를 끼고 있는 이태리반도와 한반도를 들 수 있다. 그 한반도 중에서도 태안반도 변산반도 고흥반도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고흥반도는 잠재적 문화예술이 곳곳에 널려 있다.
박 군수의 치적은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송수권 문학상을 만들게 되었다는 것은 고흥의 문화예술을 한 차원 끌어올린 결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전국지자체 장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보기 드문 혜안과 결단력이었다. 어려운 여건을 헤치고 오로지 고흥의 문화예술을 위한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며칠 전이다. 그는 고 송수권 시인의“시골길 또는 술통”의 시비를 세우고 고흥이 낳은 서정시인의 넋을 기렸다고 한다. 참으로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기해 보자. 평소 송수권 시인은 “시의 표준어는 전라도 사투리다. 우리나라 서정시의 가락은 판소리가락을 타야 한다. 특히 반도 땅, 고흥사투리는 남도의 한과 멋이 서려 있는 대표적인 시어가 아닐 수 없다.”며 중앙문단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힐 줄 모르고 역설했던 그의 모습이 얼비쳐온다.
전국시인들이 모인 충북 제천 오탁번 시인의 원서문학관에서 강의 때였다. 고흥사투리로 3시간여의 시 창작 강의를 하면서도 전라도 사투리는 끊이지 않았으며, 서정시의 맥은 한과 멋 그리고 정신이라고 했었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철학이면서 호남의 정신인 대나무정신, 황토정신, 갯벌정신을 역설했었다. 그리고 풍류문학이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그 의미를 심도 있게 설파했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시는 남도의 소리와 말 가락에서 비롯됐다며 다음과 같이 설파했었다. 시나위(산조) 가락은 호남이 그 발생지로 알려져 왔다. 산조(散調) 가락을 흘림기법과 덤벙 기법 또는 허튼 가락이라고 부른다. 판소리 발생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어있다. 동시에 시나위는 민중의 가락이면서 흩는 기법이다.
시 또한 표준말의 정악기법으로는 무미건조하여 파격의 멋과 가락이 생기지 않지만 토속어의 감칠맛 나는 “그런데”가 아니라 “그런 디”나 “그리 하였 는 디”로 갔을 때 노래가 형성된다. 시는 노래의 체계에서 비평의 체계로 넘어왔다고 우김질해보아야 마치 나전칠기에서 사용하는 발색기법인 건칠(乾漆)에 불과하다. 표준말의 정서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북무남창(北舞南唱)의 그 남창(南唱)이란 말은 곧 대(竹)의 숨구멍에서 왔음도 알 수 있다.시(詩)로 가면 그것이 곧 ‘구슬리는 말법’이요 ‘눙치는 가락’이 된다. 이것이 또한 서북정서와 남도정서의 다른 점이라 할 것이다. 인용한 시들에서 ‘신바람’은 곧 남도풍류를 말함인데 남도풍류는 검약과 절제의 정신으로 다져진 즉흥성과 구강성의 멋과 맛의 가락으로 ‘구슬리는 말법과 눙치는 가락’으로 요약된다. 줄 풍류(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와 (중금, 소금) 중 대 풍류는 난세에는 죽창(竹槍)으로 빛났고 태평성대엔 피리소리로 뜬 것이 남도역사다.
‘문 안에 들어가면 대밭이 있는데 방 안에 들어가면 어찌 난초가 없겠는가?’하는 말은 재인(才人)들이나 의병들이 그 끼를 자랑할 때 쓰는 말이다. 줄 풍류나 대 풍류는 고을 원님(목사)을 맞이할 때 삼현육각(三絃六角)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따라서 대와 황토, 갯벌정신은 국토의 3대 정신으로 해석하는데 내 시는 여기에서 한 치 반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 특히 토속적인 원형감각을 지금까지도 고집스럽게 밀고 온 까닭은 표준어보다는 부족방언의 기능이 훨씬 시적 언어라는데 있다.
이뿐 아니다. 그는 자신의 문학상 수상자의 시의 작품은 전라도 사투리가 돋보이는 판소리가락으로 위의 3대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누누이 되 뇌였었다. 하지만 2회를 치르는 동안 송 시인의 유지와는 달리 원로급 시인들이 수상자로 선정돼 그 유지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실지로 송시인과 필자는 부부지간에도 할 수 없는 속말을 주고받는 사이였다. 산문의 문턱을 넘기 직전 필자와 정홍순시인에게 했던 말들이 생생하다. 자신의 3대정신과 전라도 사투리 그리고 판소리가락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계승, 발전 시켜 나가라는 그 말이 쟁쟁하게 울려온다. 무엇보다 그는 “홍순아! 너는 나의 두루마기를 입고 원형적이고 토속적인 시를 쓰고 판소리가락을 업어라”고 부탁했었다.
지면 관계상 이만 줄이고 박 군수가 세운 시비전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자전거 짐받이에서 술통들이 뛰고 있다 / 풀 비린내가 바퀴살을 돌린다 / 바퀴살이 술을 튀긴다 / 자갈들이 한 치씩 뛰어 술통을 넘는다 / 술통을 넘어 풀밭에 떨어진다 / 시골길이 술을 마신다 / 비틀거린다 / 저 주막집까지 뛰는 술통들의 즐거움 / 주모가 나와 섰다 / 술통들이 뛰어 내린다 / 길이 치마 속으로 들어가 죽는다 / 술을 넙죽넙죽 받아먹고 취한 시골길 (송수권 시인의 시골길 또는 술통 전문)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6-09-05 07:52 송고
2016-09-05 13:21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