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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간을 가다가
바람에 댕강 허리가 잘려나간
단칼에 목이 달아난
뿌리 채 뽑혀져 시신처럼 나뒹굴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나이들을 세어보니 칼을 가는 소리보다 더 섬뜩한
수십 살 아니 수백 살이다 이 계절
너희들을 쑥밭으로 만든 것은 바람이 아니다 칼바람도
아니다 걸음을 멈춰놓고 경악하게 한
무지막지이다
바람을 만나기전에 세상은 고요했다
봄이 오면 뿌리에서부터 생명을 잉태하고
여름에는 가지마다 온 몸을 드리우고
가을에는 불멸의 환상을 꿈꾸며
겨울에는 부활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지상에는 간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치미를 뚝 뗀
잔허(殘墟)만 남아 있을 뿐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부재중이다
천길 나락으로 떨어진 것들아
바람 잘 날 없는 삶에 지쳐
넋이야 잃었다마는
일생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식어가는 가슴으로나마 너희들
순백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삼십배 육십배 백배 무릅을 꿇을란다
운명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사랑을 위하여
보이는 것이 진실인 아침 해가 떠오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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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1 04:1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