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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롱성 고택은 순천에서 가장 유서 깊은 집이다. 우리나라 해양역사의 흥망성쇠가 녹아있는 해룡산성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해룡성 고택은 정조 즉위년 1776년에 청계(聽溪)문효광이 건축했다.
문효광은 만석꾼으로 순천만의 갯벌 개척과 염전으로 부를 이루며 살았다. 조선 팔도의 과객은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인근에서도 문효광은 후덕한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지금은 문효광의 7대손인 문창훈이 조상대대로 내려온 문화를 이어받아 외국인 내국인을 정성껏 대접하고 있다. 특히 해룡성 고택은 2013순천만국제박람회의 중추적인 민박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봄맞이를 서두르고 있다.
해룡성은 본래 해자성이었다. 후백제와 고려왕조를 창조한 발상지로 후백제 초대왕인 견훤(867~936)이 군사를 주둔시킨 곳이었다. 해룡성은 사면이 바다로 둘려 싸여있고,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군사를 주둔시키기에 안성맞춤인 천혜의 요새였다. 대한민국 해양수도의 중심 혈 자리였다.
지금의 부산항인 국제무역 사비포항을 지키기 위해 축성되었던 해자성은, 고대 해상세력의 거점이었다. 백제시대에는 사평성으로 불렀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적의 사격이나 관측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서 엄폐호하기도 했다. 그 해자성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아호를 따서 해룡성으로 개칭된 것이다.
그 시대 사람으로 박영규는 해룡산성의 아성이었다. 바다의 용이 육지로 나와서 승천하는 자리라고 일컫는 해룡산성에서 박영규는 남해안 해상 무역 권을 손안에 쥐고 흔들며, 남도의 넓은 토지를 독점한 호족이었다. 그가 해상 왕이 된 것은 장보고가 죽은 후 그를 추종하는 해상 세력을 규합하여 새로운 해상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박영규는 여수 소리도(연도)에 해상 기지를 두고, 순천만 동천 끝자락의 사미포에 무역항을 만들어 여수를 통해 올라오는 재력을 축척했다. 여수 가막만 둔병도, 낭도, 적금도. 조발도에 해상병을 진 쳐놓고, 내부로는 어떤 세력도 들어올 수 없도록 요새를 만들어, 당나라와 일본의 무역을 독점한 사람이다. 부를 축적한 박영규는 해룡산에 토성을 쌓고 아방궁을 지어 세력을 확장했다.
그때 박영규는 백제 땅에서 배출된 마지막 왕인 견훤장군과 상봉을 한다. 전시 감독관으로 파견을 나와 해적들을 소탕한 견훤장군은 통일신라가 어지러워지자 후백제를 세우기 위해 전라남도 승주 출생인 순천의 호족 박영규를 설득한다. 견훤장군은 사랑하는 자신의 딸을 박영규에게 시집보낼 것을 약속하며 후백제 건국 도모를 제안한 것이다. 결국 견훤의 장군이 된 박영규는 물심양면으로 장인, 견훤을 도와 후백제를 건국했다.
후백제는 견훤과 김총, 박영규가 여수, 진례, 서남방 사령부에서 만든 나라이다. 후백제의 초대왕인 견훤의 아들 신검(처남)이 반란을 일으키자, 박영규는 장인을 보호하기 위해 왕건을 만난다. 왕건은 박영규에게 후백제와 신라를 치고 고려를 건국하자고 제의한다. 그때 박영규는 해룡산성에서 나주와 순천의 호족들과 함께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다. 박영규의 세력이 하늘을 찌르는 동안 박영규장군의 큰딸 동산은 고려 1대왕인 왕건(918~943)의 비가 되고, 둘째딸과 셋째 딸은 고려 정종의 1비인 문공왕후와 2비인 문성왕후가 된다.
역사의 흥망성쇠를 도모한 해룡산성은 2.85킬로미터이다. 서울 올림픽 공원 내에 위치한 2.7km의 몽촌토성과 규모가 거의 같다. 몽촌토성은 백제가 국가를 형성하는 시기인 3~4세기 사이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산성에서 뻗어 내린 구릉지의 지형을 이용해 외성과 내성의 이중구조로 축조한 독특한 성인 몽촌토성은 광주의 풍납리토성, 서울의 삼성토성과 연결된 위례성의 주성으로 사적 제297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서울 시민들과 외국인의 휴식공간으로 또한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접할 수 있는 나들이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 나라의 성곽 연구가 궤도에 오른 것은 1960년대 말부터이다. 각 지방의 산성들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가 역사학자들에 의해서 조사되었고, 현재도 조사되고 있다. 문헌자료가 적은 자료는 보충하려는 연구가 나타났고, 옛 성곽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있는 곳들도 많다. 충북대학교에서는 삼년산성, 상당산성을 발굴하여 역사를 조명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에서는 양주산성과 경주월성 등에 대한 발굴조사를 하고 있다. 공주대학교에서는 공산성을 조사발굴하고 있고, 전북대학교에서는 익산지방의 산성을 조사발굴하고 있다. 전주시립박물관에서도 전라도 지역 성지 조사 등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 건국역사, 해양역사의 대명제인 순천 해룡산성의 발굴은 2013년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평화시대에는 동아시아의 활발한 무역항이었지만, 전시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는 쑥대밭이 되어버린 해룡산성이다. 지금은 날마다 허물어져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에 놓여 있다. 동천과 이사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순천만에 위치해 있는 해룡산성이, 서울의 몽촌토성처럼 하루빨리 복원되어 해룡성 고택도 역사에 길이 빛났으면 하는 바람 간절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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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31 10:43 송고
2013-04-04 17:0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