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 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으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박수근 작, 아기업은 소녀, 1953>

  백석(1912. 7.1~1966. 1)은 시인으로 평안북도 정주 출생이다.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의 대표 시는 <통영> <고향> <북방에서> <적막강산> <거미>등이다. 방언을 즐겨 쓴 백석은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1963년을 전후로 월북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연구자에 의해 유족 확인을 거쳐보니 사망연도가 1996년이라고 밝혀졌다.

  <수라>는 간단한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차디찬 밤, 무심히 버린 새끼거미 한 마리 때문에 일가족을 모두 만나게 되는 방안 풍경이다. 엄동설한이지만 새끼 있는 곳으로 가라고 시인은 어미거미를 문밖으로 내보낸다. 이제 갓 태어나 일어서지도 못하는 새끼거미는 어미를 찾아 내 보낸 자리로 다시 돌아온다. 엄마나 누나나 형이 그 작은 것 가까이 있다가 만나기나 하면 좋으련만, 가슴을 아리게 하는 백석의 세계관이 모태 공동체적 유대감을 갖게 한다. 그는 따뜻하지만 외로울 방 안보다는, 춥고 위험하나 식구들이 있는 문밖이 거미들에게는 나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인간적인 슬픔을 느끼며 어미거미, 새끼거미를 문밖으로 내 보내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수라>는 아수  라의 약칭이다. 무서운 귀신 혹은 육도의 하나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수라>는 인간보다는 더 고통스럽고 짐승보다는 나은 중생의 삶이 영위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민중들의 삶을 우화적으로 표현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