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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스랑으로 머리를 빗고 낫으로 수염을 깎는 아주 오래된 정원이 있다. 순천시 저전동에 위치해 있는 <다심정가>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덩치가 황소보다 큰 한 오억 년 묵은 도가지가 즐비하게 서서 모은 양손을 배위에 올려 고개를 약간 숙이며 손님을 맞이한다.

  하도 정갈한 모습으로 근엄하게 맞아주기 때문에 긍께 뭐시냐, 오래 적적 허지 않았소?, 오래 적적 허지 안했는가요? 오래 적적? 하여튼 이 집에 발을 들여놓고 인사를 받은 이상 전라도 사투리로 어떤 안부를 교환할 것인지 뼉다구 있는 가문의 자손이라면 누구나 얼떨결에 고민하게 된다.

  <다심정가>의 살림살이를 염탐하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려는 찰라 손님은 주인장을 보고 또 한 번 깜짝 놀란다. 태초에 하나님이 흙으로 빚었다는 아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의 외아들 예수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태어나면서부터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쳐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던 부처님 그림자를 따라 다닌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어쨌든 주인장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태초에 에덴동산에서 본 것 같은 아주 오래된 정원이 여러 개 있다. 방 가운데 식탁을 재떨이처럼 놓아두고 낭떠러지와 첩첩산중과 우여곡절을 소재로 한, 횃대보, 다이얼전화기, 재봉틀, 술도가지, 농짝, 절구통, 벽난로, 수레바퀴, 붓글씨 같은 옛것들이 삶의 깊이를 은연중에 말해주고 있다.

  정원은 자연인가요, 예술 공간인가요? 하고 손님이 질문을 하면, 입술사이로 이 빠진 옆자리가 보일 듯 말듯하게 살짝 미소를 머금은 주인장은, 저는 예술이 뭔지는 잘 모르것고 이곳이 우리 조상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우리 집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쓰신 물건들도 있고, 제가 워낙 옛것을 좋아허는 미친갱이라서 한 점 두 점 모으다보니 숫자가 많아진 것 뿐이당께요, 비록 좁은 공간이지만 저를 찾아오신 손님들과 함께 차도 마시고 밥도 묵어야 허것다는 욕심이 생깁디다. 채린것은 변변허지 않지만 맘 툭 터놓고 정담들 나누면서 편안하게 잡수시오 이~하며 겸손하게 예의를 갖추는 분은 주인장 강동윤씨다.

  <다심정가>는 한마디로 한정식 식당이다. 인테리어를 전공한 강동윤씨와 새댁 때부터 손맛이 좋다고 주변사람들에게 소문이 자자한 아내 박동심씨가 안팎으로 정갈하게 관리하고 있다. 또한 2013년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걸맞게 조상대대로 내려온 가정집 정원으로 으뜸가는 집이다. 맛으로도, 음식 값으로도, 한번 찾아오신 손님이 다른 손님에게 권해도 전혀 부담 없는 식당이다. ‘다심정가’는 그동안 국내외의 정치가, 예술가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다심정가>의 요리재료는 날마다 새롭다. 제철에 나는 재료들을 구입하기 위해 사장님과 사모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순천 웃장, 아랫장 역정 시장을 돌며 생선이나 야채를 물이 좋고 싱싱한 것으로 골라서 준비한다. 새콤달콤하게 무쳐내는 오징어와 낚지 무침, 쌉쓰름하게 입맛을 돋궈주는 고들빼기김치, 겨우내 땅에 묻어둔 묵음김치에다가 돼지고기 수육에 홍어가 함께 어우러진 삼합, 금풍생이찜, 갈비찜, 키조개무침, 새우찜, 허브부침개, 영광에서 직접 배달해온 영광굴비, 도토리묵을 쑤어서 말린 도토리묵 볶음 등을 먹으면 음식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밑반찬으로는 배추김치, 깍두기, 동치미,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버섯나물, 게장,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 멸치조림, 등 10여 가지가 상위에 오른다. 음식이 워낙 맛깔스러워서 젓가락 숟가락으로 손놀림을 하다보면 상위에는 남아나는 음식이 별로 없다.

  그중에서도 손님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금풍생이 찜이다. 경남에서는 꾸돔, 전남에서는 쌕쌕이라고 부른다. 여수에서는 예쁘게 잘 생겼다고 꽃돔, 또는 군평선이라고도 부른다. 금풍생이는 맛이 워낙 좋아 본남편에게는 안주고 샛서방에게만 몰래 차려준다고 해서 샛서방 고기라고 부르는 물고기 이름이다.

  재작년 봄쯤이었던가? 지인이신 김용수 시인을 따라 <다심정사>에 간 적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 나무판에 새겨져 담벼락에 비슷하게 서 있는 김용수 시인이 쓴 <다심정사>라는 시가 가슴에 비수처럼 파고 들어왔다. 또한 시를 사랑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그날 식탁에서 만난 놈이 하필이면 금풍생이다.

  그날 밤 일필휘지로 //금풍생이//오양심//꼰지발을 딛고 서서 너를 기다리고 있다 아니다 막상 너와 만났다고 한들 너는 언제나 불만이 가득 찬 것 같이 주댕이를 내밀고 있어 꼬라지를 보기만 해도 상처가 되는 왕재수다 꾸마 그리고 예수리여! -생략-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힘 있는 놈이라고는 씨가 말라버린 지리멸렬한 잠 속에서 자랑스럽게 턱수염을 휘날리며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당당하고 싱싱하게 나를 향하여 막무가내 돌진하는 놈이 있었다 뼉다구 있는 집안 출신이어서 나를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뼈가 굵고 살이 단단한 놈은 맛이 일품이었다 꿈을 깨고 예술에 사는 니가 나냐 나가 니냐 //샛서방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여수의 명물//이라는 시(詩)를 써서 인터넷 신문인 참살이 뉴스에 발표한 적이 있다.

   <다심정가>의 주인장은 밥상머리에서조차 손님에게 즐거움을 주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남자가 여자 옆에 앉아있어도 가슴이 떨리지 않으면 병원에 가봐야 하며, 남편이 아내 옆에 앉아 있을 때 가슴이 떨리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 등의 해학으로 깨달음을 준다. 판소리에서 일고수이명창, 일청중이고수삼명창이라고 하는 말은 들어봤으나 차와 음식을 대접하여 인정을 베풀어놓고 배꼽을 거머쥐게 하는 주인장은, 찾아온 손님을 일순간 명청중으로 만들어버린 지혜와 덕이 뛰어난 성인(聖人)이시다.

  <다심정가>에서는 음식만 내는 것이 아니다. 상을 물린 뒤에 내온 물수건 하나에도 정성이 뻗쳐있다. 아기손가락처럼 앙증맞은 수가 놓인 물수건을 보면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이다. 또한 식후에는 마당 모퉁이에 지어놓은 황토 초당에서 녹차를 대접 받으면서, 2층 방을 가득 채운 각종 수집품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사장님은 모과, 유자, 녹차 등을 가미한 동동주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2013년 4월 20(토)부터 2013년 10월 20일(일)까지 전라남도 순천에서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 한정식의 전문식당인 순천 저전동에 위치해 있는 <다심정가>에 가면 혼자보기 아까워서 재산의 전부를 투자하면서까지 알뜰하게 모아놓은 골동품과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농담을 맛볼 수가 있다. 대한민국 7천만 식구들이여! 지구촌 70억 형제자매여! 정원이 만들어낸 예술의 공간 <다심정사>에서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순천의 가정집 정원은 어떤 곳인지 그 분위기에 흠뻑 젖어보지 않을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