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수 편집국장
“순천의 김혜순을 아시나요? 한복의 장인을 아시나요? 아니요. 한 땀의 기다림과 천 조각이 자아낸 나눔과 연결의 미학을 아시나요?”
물음표를 던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의 미를 상징하는 한복공방과 관련 있는 이야기다.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기다림’과 ‘정성’이라는 단어는 점차 희소해지고 있다. 지금은 손가락 몇 번의 움직임으로 원하는 것을 쉽게 얻는 시대다. 하나의 작품을 위해 수천 번, 수만 번 바늘귀를 꿰어온 시간이 있다면 그 자체로 커다란 울림을 준다.
순천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순천창작예술촌 2호 김혜순 한복공방에서 오는 8월 27일까지 열리는 이인식 작가의 초대전 「바느질에 담긴 시간」은 바로 그 느림과 정성의 가치를 증명하는 자리다.
특히 김혜순 장인은 궁중한복의 달인이다. 전통 복식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현대적 예술로 승화시키며 한복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이끌어온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한복 디자이너이자 장인이다. 그녀의 발자취와 예술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키워드들을 정리해 보자.
첫째는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복의 미를 알렸다. 즉, 대중에게는 역사극의 복식 고증과 아름다운 현대적 재해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자면 드라마 “황진이”와 영화에서 “서편제, 사도,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의 복식을 제작하고 감독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 ”황진이“에서는 화려하고도 격조 높은 한복들은 당시 대중문화계에 거센 한복 열풍을 일으켰었다. 한복이 얼마나 세련되고 매혹적인 예술품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했었다.
두 번째는 한복의 세계화다. 우리 옷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전 세계에 보여주며 문화 외교관 역할을 해왔다. 즉,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최초로 한복 패션쇼를 개최한 것을 비롯해,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중심지에서 한복의 선과 색을 선보였었다. 서양의 드레스 못지않은 우아함과 기품으로 해외 언론과 패션계의 극찬을 받았었다.
세 번째는 전통에 대한 깊은 고증과 저술 활동이다. 단순히 예쁜 옷을 짓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옷의 뿌리를 찾고 기록하는 학구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왔다. 조선시대 왕실 복식부터 민간의 생활 복식까지 철저하게 고증하면서 전통 바느질법과 천연 염색 기법을 고수했었다.
따라서 김혜순 장인은 자신의 고향인 순천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연유일까? 그녀는 ”순천창작예술촌 2호, 김혜순 한복공방“을 열고 있다. 장인이 평생 다듬어온 우리 옷의 가치를 지역민과 공유하고, 전통 규방공예와 한복 문화를 꽃피우는 거점이 되고 있다. 따라서 그 의미가 매우 깊은 공간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이인식 작가의 조각보와 ‘바느질에 담긴 시간’의 전시는 아름다운 전통 예술을 선사하는 것이다.
조각보는 본래 과거 규방 문화에서 쓰다 남은 자투리 천들을 모아 만들던 생활용품이었다. 작고 보잘것없어 버려질 수도 있었던 천 조각들이 작가의 손길을 거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 작가가 오랜 시간 매진해 온 전통 규방공예와 조각보 작업은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선다. 서로 다른 색과 질감을 가진 천들이 한 땀 한 땀 이어지는 과정은, 우리 전통 생활문화 속에 깊이 뿌리내린 ‘절약과 배려의 정신’을 보여준다. 모자란 것을 탓하지 않고, 남은 것을 귀하게 여겨 조화롭게 엮어내던 선조들의 마음이 작가의 바늘 끝을 통해 오늘날의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 진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조각보가 지닌 ‘나눔과 연결의 미학’이다. 작가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은 듯한 천 조각들을 연결해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만들어낸다. 작품마다 드러나는 다채로운 색감과 입체적인 질감의 조화는 현대적인 추상화를 연상시킨다. 어쩌면 세련된 감각을 자랑하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이는 전통 바느질 기법이 과거의 유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디자인으로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단순한 패브릭 아트를 넘어, 전통과 현대의 시간을 잇는 숭고한 예술 작품으로서 조각보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다.
게다가 조각보를 짓는 일은 흩어진 마음을 모으고, 단절된 것들을 연결하는 치유의 과정과 닮아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이어지는 7월과 8월, 순천창작예술촌 2호가 마련한 이 아늑한 공간은 바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가 되어줄 것이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궤적을 바라보며, 우리가 잃어버리고 살았던 '정성'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아니다. 한 땀 한 땀 정직하게 채워진 바느질의 흔적들이 우리 마음의 빈틈을 따스하게 메워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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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3 04:57 송고